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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상대의 현실은 내가 상상한 나의 현실이다. 불교에서 상(相)이란 자아를 투사한 영상이다. 법은 주관적 가치관이 전혀 섞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실체이다. 어떤 것의 지각(知覺)은 자동적으로 무엇인가를 선호하는 행동을 포함한다. 이는 자기 이해와 자기주장, 그리고 자기 강화와 자기 확대와 연관된다. 이것은 이기적이지 않기가 어렵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칭찬하고 욕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한형조 지음, 문학동네 펴냄), 134쪽, 149쪽)

우리는 내 안의 미덕을 투사하여 누군가를 칭찬하며, 내 안의 악덕을 투사하여 누군가를 비난한다. 가령 외모 꾸미기에 능숙함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은 남을 칭찬할 때 “세련된 멋쟁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누군가의 이해 타산적 면모를 주로 비난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이해 타산적 면모를 인식하는 사람이다.

연애처럼 상이 난무하는 장도 없다. 상대의 현실은 자주, 나의 주관적 영상을 투사한 나의 복제품이다. 내 판타지를 투사할 때 상대는 미덕 그 자체가 되고, 내 안의 악덕을 투사할 때 상대는 위험한 나쁜 남자/ 여자가 된다.

우리는 누군가의 매력을 안다고 생각하거나 말한다. 그런데 그 매력이 정말 그의 것인가. 내가 상상한 매력, 내 안에서 길어내 그에게 투사한 매력 혹은 내 안의 소망을 투사한 매력은 아닌가.

상대의 매력은 종종 내 판타지를 투영한 나의 상(相)이다.

때로 연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자질을 상대에게 투사하면서, 그것이 상대의 매력이라고 믿는다. 가령 어떤 여자가 상대에게서 결단력이라는 매력을 발견한다. 그녀는 결단력이 필요했기에 상대에게서 결단력이라는 매력을 가공하고 편집한다.

또한 우리는 상대에게서 ‘나와 닮은 것’을 찾는다. 종종 우리는 상대 안의 나에게 매혹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 소망과 내 결핍이다.

우리는 내가 가지고 싶은 자질을 가진 그, 내 소망을 실현한 듯한 그를 사랑한다. 박식해지고 싶은 사람은 박식해 보이는 그에게 매혹된다. 성공하고 싶은 사람은 성공한 듯 보이는 그에게 매혹된다.

자기 결핍을 의식하는 사람은 유사한 결핍을 가진 듯 보이는 그에게 매혹된다. 누군가 묻는다. 그에게 왜 반했니? 그는 상처 받기 쉬운 어린 아이 같아. 이때 생략된 말, 그러나 가장 중요한 말은 ‘나처럼’이다.

나의 현실, 내 소망과 결핍은 상대에게서 매력을 생산해 내는 발전기다. 나의 소망을 투사할 때 나는 상대를 예찬한다. 나의 결핍을 투사할 때 나는 상대를 안쓰럽게 여긴다. 상대의 매력의 원천은 ‘나’이다.

뿐인가. 시작하는 연인이 진정으로 경탄하는 대상은 상대 자체가 아니라 사랑에 빠져 있는 나이다. 나는 그의 실상이 덜 궁금하다. 그를 만났을 때의 나의 모습을 곱씹어 떠올리며, 나의 행동이나 말을 자화자찬한다.

그와 함께 있었을 때 나는 얼마나 아름다웠는가. 그때 나의 말은 얼마나 멋있었는가. 그에게 비친 나는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그에게 나는 얼마나 괜찮은 인상을 주었을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스스로를 사랑스러워한다. 연인은 상대의 매력에 경탄하는 예찬자 이상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자기의 사랑스러움에 매혹된 나르시시스트이다.

[박수현의 ‘연애 상담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1230194534&Section=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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