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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예술로 인간의 상처를 끌어안다

구겐하임의 <마망> -출처 BBC

Crochet III from Crochet I-V 1997 -출처 http://www.moma.org/

루이스 부르주아는 페미니즘으로 대표되는 작가이자, 조각가이며, 추상작품 아티스트이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어머니를 너무나도 사랑했다. 그리고 반면 너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를 배신하고 자신의 가정교사와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를 깊게 증오했다.

신뢰가 무너진 관계. 그녀는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이 그토록 아끼는 어머니를 배신한, 너무나도 가부장 적이여서 그녀가 예술을 시작하자 천박한 직업이라고 탓하던 아버지를 향한 증오.. 그녀에게 그때의 상처는 안정적이고 확실한 답을 찾을수 있는 소르본대학의 수학도에서, 파격적이고 강렬한 힘을 가진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로 만들었다.

The destruction of the father(아버지의 파괴) 1974 – 출처 BBC

“I got peace of mind, only through the study of rules nobody could change.”

-Louise Bourgeois-

아무도 바꿀수 없는 그 확실한 답이 있는 수학에서 평온을 얻던 소녀는, 증오를 업고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의 부조리함, 혹은 그 두 성을 합친것 보다 더 강한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작품을 만들었다. 사실 그녀가 처음부터 조각을 한건 아니였다. 에꼴드 보자르와 에꼴드 루부르에서 페인터로서 예술계에 들어선 그녀를 지켜보던 Fernand Leger는 그녀에게서 독특한 재능이 있다는걸 발견했고 그게 바로 조각이란걸 알고, 바로 그녀에게 조각의 길을 열어주었다.

화가에서 기하학적인 작품을 뽑아내는 조각가로 돌아선 그녀의 선택은, 그리고 페르낭 레제의 안목은 탁월했다.

그녀의 초창기 작품들은 특히나 공격적이고 파격적이며, 폭력적으로 보이기 까지 하는 과감한 에로티시즘에 대한 표현이 아버지로 인해 받은 상처와, 불신의 감정, 그리고 남성성을 이긴 어머니란 존재에 대한 경외감을 나타낸다.

사실 그녀는 꽤 늦은 나이에 늦은 나이에 예술계에 입문했다. 40대, 그리고 여성이란 것은 예술계에선 흔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의 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들이 독식하고 있던 예술계에 40대의 나이로 당당하게 입성,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가 되었다.

마치 그옛날 마리아테레지아의 환생이 아닐까 싶을만큼 이 에너제틱하고 용감한 여인은, 99세로 세상을 떠나기 바로 직전까지 작품활동을 했다.

Seven i n bed 2001 – 출처 BBC

파격적이던 그녀의 작품은 점점 모성애와 사람과의 관계의 이해로 변해간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오는 여성이란 존재의 나약함.. 아니 이 나약함은 힘이 없는 나약함이라기보다 섬세한 여성의 마음과 몸.. 그 가녀리고 부서질것 같은 유리같은 여성의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한 엄마의 마음이였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여자이고..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고..

복수심과 증오로 가득찼던 소녀는 엄머니가 되고 작가가 되면서, 자신의 사랑하는 어머지를 지키기 위한 터프한 용사에서, 세상 모든 어머니를 이해하고 딸들을 어루만지는 가족을 생각하는 성모가 되었다.

The Maternal Man 2008 – 출처 http://magazine.saatchionline.com/

▼ 흔히들 당신을 페미니즘 작가라고 한다. 맞는가.

“나는 내 작품을 어떤 ‘이즘’으로 묶는 것에 반대한다. 다만, 아는 것에 관해서만 얘기할 뿐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없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들을 위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늘 ‘나 자신’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그동안 드로잉에서부터 천 조각에 석판화를 찍는 작업, 수건으로 만든 조각 작품, 손바느질한 천 조각 등 장르와 재료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업을 해왔지만, 일관된 주제는 오랫동안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했던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어릴 적 상처다.

-신동아매거진 2010.08.01 통권 611호(p512~523) 루이스 부르주아 인터뷰 중-

비록 그녀는 배신한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죽는 순간까지 그를 용서하진 못했겠지만.. 그 아픈 상처와 증오 뒤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결혼이 올바르고, 영원히 행복하길 바랬다. 그리고 그 바람이, 그 행복이.. 자신에게도,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존재하길 꿈꿨다. 관계.. 그 사랑으로 이루어진 결혼이란 관계가 완벽하고 영원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나길 바란.. 그런 여자 루이스 부르주아..

어찌보면 그녀는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그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 가족의.. 아름답고 완벽한 가족에 대한 동경을 항상 마음에 품은체..

Everyone should have the right to marry. To make a commitment to love someone forever is a beautiful thing…..
-Louise Bourgeois-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

마망은 참 나에게 고마운 존재였다. 그 커다란 거미는 마치 나의 해로운 나쁜잡념을들 잡아먹었고, 따스한 거미줄옷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런던에서 나를 그렇게 위로해주더니, 이젠 서울에서 이렇게 나를 보듬어준다.

고마운 마망…. 너무나도 열정적인 여자, 너무나도 멋진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

이제 종종 리움에 그녀에게 인사를 건내러 가야겠다.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Born 25 December 1911(1911-12-25)
Paris, France
Died 31 May 2010(2010-05-31) (aged 98)
New York City, United States
Nationality French-American
Field sculpture, installation art, painting
Works Ma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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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인간의 상처를 끌어안다

[전시 소개]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Les Fleurs’전

이동권 기자 su@vop.co.kr

입력 2010-01-29 15:10:08 l 수정 2010-01-29 19:55:11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루이스 브루주아전 포스터 이미지ⓒ민중의소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루이스 브루주아전 포스터 이미지

세계 미술의 거장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20세기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기존의 양식이나 사조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예술세계를 이룩한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1982년 미술관 모마(MoMA)에서 여성 작가로는 처음 회고전을 열 수 있었고, 1999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까지 수상하게 됐다. 또한 자전적인 소재를 바탕으로한 그의 작품 세계는 내용과 형식의 파격을 보여주면서 현재 활동하는 다양한 미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부르주아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가정교사의 부적절한 관계와 어머니의 죽음을 보고 자라면서 정신적으로 불안감을 느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그의 자아에 깊이 자리 잡은 것이다. 때문에 그는 남성과 여성의 갈등과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작품에 담았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사에 대한 모순과 애틋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르주아는 평소 “내게 조각은 신체다. 내 몸이 곧 내 조각”이라고 말했다. 인간으로서, 특히 여성이 얼마나 깨지기 쉽고 외로운 존재인지 예시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치유의 손길을 내민다.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특한 예술세계를 통해 인간의 상처를 끌어안는다. 그의 작품이 더욱 감동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작품은 문명을 모르는 미개인들의 주술적인 행위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진솔하고 뜨겁다.

한국 나이로 올해 100세를 맞은 그는 숫자로만 보면 운신하기 조차 힘든 고령에 이르렀지만 하루 2시간 이상 꾸준하게 그림을 그리며 왕성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국제갤러리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전작들과 최근 작품을 망라하는 전시 ‘Les Fleurs’전을 2월 24일부터 개최한다. 부르주아는 ‘설치미술’의 선구자로, 남성들의 전유물로만 느껴졌던 거대한 돌과 쇠 등을 이용해 작품 활동을 해왔다.

브루주아(Louise Bourgeois)ⓒ민중의소리

Il Etait Reticent, Mais je L’ai Revele, 2003 (He was reticent. But I have revealed him.) Suite of 82 double sided mixed media drawings 9 1/8 x 8 inches (23.2 x 20.3 cm)

부르주아의 작품세계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은 기존의 어떤 양식이나 범주로도 쉽게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독자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동시대의 예술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원시미술,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실존주의 등 20세기에 나타난 중요한 미술사조들을 익히고, 그 대표적인 미술가들을 가까이 하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전통과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그의 성향 때문에 기존의 어떠한 원칙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 나갔다.

그는 재료와 양식, 형태에 어떠한 구애도 받지 않고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그의 작품은 일반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추상에 가까운 기둥 형태의 인물상에서부터 신체의 부분이나 성적인 이미지를 에로틱한 형상으로 표현한 조각, 손바느질한 천 조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우신 미술평론가는 부르주아의 작업에 대해 “자신의 조각난 마음을 해소하는 일종의 심리적 치료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는 “부르주아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작품의 형식을 파격적으로 가져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있어 작업이 예술적인 행위를 넘어선 감정의 정화작용이었다”면서 “그는 인간의 무의식과 내면의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면서 욕망과 고통, 사랑과 고통 등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표출한, 어두운 과거와 미적 에너지를 자신의 의지대로 조절해낸 작가”라고 설명했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루이스 부르주아는 1911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양탄자 수선 사업을 해 온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8살 때부터 양탄자 도안을 그리는 작업을 통해 가업에 참여했다. 그의 어머니는 현명하고 포용력 있는 성격인데 반해 아버지는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었다. 특히 아버지는 아이들의 영어 가정교사와 불륜 관계를 맺으면서 어린 부르주아에게 커다란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다. 이 시절에 경험한 배신의 상처와 아버지에 대한 증오, 어머니에 대한 연민 등은 부르주아 예술의 지속적인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신적 불안감을 느꼈던 부르주아는 수학의 예측가능하고 안정된 체계에 끌려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곧 수학적 관념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이론적 구조일 뿐임을 깨닫고 예술의 세계로 들어서기로 결심한다. 부르주아는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와 에꼴 드 루브르(Ecole du Louvre)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몽마르트 및 몽파르나스에 있는 화가들의 스튜디오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 시절에 그녀를 가르쳤던 여러 화가들 중에서도 특히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는 부르주아에게 삼차원에 대한 관념을 심어주어 훗날 조각가가 되는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38년 부르주아는 미국인 미술사학자인 로버트 골드워터(Robert Goldwater)와 결혼하여 뉴욕으로 이주했다. 1940년대 말부터 기하학의 영향이 엿보이는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한 그는 1949년 뉴욕의 페리도 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조각은 재료가 다양해지고 주제가 과감해진 50년대와 60년대를 거쳐, 70년대에는 급속도로 부상한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더욱 강렬하고 파격적인 인상을 띠게 되었다.

70년대 말부터 새롭게 주목 받기 시작한 루이스 부르주아는 1982년 뉴욕 근대미술관(MoMA)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열린 회고전을 계기로 국제적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부르주아는 이후로 미국과 유럽, 남미와 일본 등지에서 수차례 회고전을 가졌으며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은 현재 세계 유수 미술관들과 주요 컬렉션들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내에서는 삼성미술관 리움과 얼마 전에 오픈한 신세계 갤러리에 대표작인 청동거미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올해 가을에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를 시작으로 유럽과 미국을 순회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릴 예정이다.

이동권 기자 su@vop.co.kr

http://www.vop.co.kr/A000002805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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