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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과 형세 -발터 벤야민의 미학, 최문규

파편과 형세 –발터 벤야민의 미학

최문규 지음 | 서강대학교출판부 | 2012년 01월 17일 출간

파편과 형세

592쪽 | A5 판형알림 | ISBN-10 : 897273196X | ISBN-13 : 9788972731962

책소개

발터 벤야민의 미학의 핵심적 개념들을 살펴보는『파편과 형세』. 이 책은 비교적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문학ㆍ역사학ㆍ철학ㆍ신학ㆍ정치학ㆍ정신분석학 등 인문학의 전체 영역에 큰 발자취를 남긴 발터 벤야민의 글들을 통해 그의 사유 세계를 통찰한다. 삶의 사상의 궤적, 바로크 시대의 심미적 비평가, 언어의 순수와 타락, 성찰, 명예훼손, 판단 망각으로서의 비평, 기술과 예술의 통합, 초현실주의와 이미지공간, 역사성과 심미성 등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본다.

저자소개

저자 : 최문규

목차

책머리에제1장 삶과 사상의 궤적
제2장 바로크 시대의 심미적 비평가
제3장 언어의 순수와 타락
제4장 바로크 · 상징 · 알레고리
제5장 성찰, 명예회손, 판단 망각으로서의 비평
제6장 기술과 예술의 통합
제7장 초현실주의와 이미지공간
제8장 대도시 · 이미지 · 배회자
제9장 역사성과 심미성
제10장 글을 맺으며참고문헌

북로그리뷰

  • 벤야민의 미학을 드러내는 개념들은 대략의 리스트 작성이 가능하다. “벤야민 미학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으로는 파편, 알레고리, 몽타주, 문지방, 형세, 사유이미지, 유사성, 미메시스, 비평, 범속한 각성, 몸이미지, 현재성, 역사적 유물론, 순간성, 메시아니즘 등 다양하다.” 저자 최문규는 독일문예사상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의 사상을 대변하는 말로 ‘파편과 ‘형세’를 꼽았다. 물론 ‘파괴와 구성’이란 후보 제목도 있었고, ‘사유와 이미지의 문지방에서’, ‘알레고리커로서의 발터 벤야민’이란 제목도 고려해 보았다 한다.그동안 벤야민에 대한 여러 학술적 평가들이 있어왔다. 저자는 “모든 단계에서 벤야민은 주체의 몰락과 인간의 구원을 동시에 사유했다”는 아도르노의 언술을 벤야민에 대한 가장 함축적이고 적절한 표현으로 소개한다. 내가 가장 적절하다고 보는 것은 위르겐 하버마스가 <발터 벤야민의 현재성에 관하여>(1972)에서 제시한 다음의 평어다.”나의 테제에 따르면 계몽과 신비주의를 결합하려는 벤야민의 의도가 실현되지 못한 이유는 경험의 메시아 이론을 사적 유물론에 활용하는 법을 신학자 벤야민은 터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우선 벤야민의 사상적 근원인 유대교 신비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잘 지적해 내고 있다. 양자는 벤야민 사상의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핵심요소로 비평적 글쓰기의 시학의 단초를 마련한다. 그런데, 하버마스의 평가대로 벤야민은 유물론적인 마르크스주의보다는 형이상학적인 유대 정신의 영향이 더 컸다. 다시 말해서 진리와 구원 그리고 종말론이라는 종교적 파토스가 비판과 해방 그리고 무산계급이라는 유물론적 파토스보다 강했다. 따라서 종교적 신비주의와 역사유물론의 결합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는 후기 벤야민이 천착한 ‘구원의 미학’의 미완결로 끝을 맺는다.

    벤야민은 기본적으로 비평가였다. 독일 낭만주의의 반체계적이고 파편적인 글쓰기 방식을 기반으로, 벤야민은 비평을 폐쇄적인 체계적 사유보다 우월한 인식론으로 간주한다.  벤야민이 보기에 모든 예술작품은 비평에 의해 완성된다. 그리고 비평도 엄연한 예술작품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비평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는 반대로 비평은 그 핵심의도에서 평가가 아니다. 오히려 비평은 작품을 완성시키고 보완하며 체계화하는 한편, 작품을 절대성 안에서 해체시키는 것이다.”

    비평은 예술의 절대적 진리성을 구원하는 유일한 수단이고, 비평이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 되는 경우가 아닌 한 비평을 써서는 안 된다. 상징이 기만적으로 보여주는 온전한 세계보다 비평에 의해 해체된 작품의 파편성이야말로 오히려 현존재에 대한 더 정확한 표상을 보여준다. 「괴테의 친화력」에서 벤야민은 “비평은 예술작품의 진리내용을, 주석은 예술작품의 실상내용을 찾는다”라는 정의를 남긴다.

    벤야민식 비평의 탁월성은 그의 야누스적 특성에 기인한다. 가령 신비주의와 합리주의, 형이상학과 유물론, 신학과 정치의 두 얼굴을 그의 모든 글쓰기와 문화분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저자 역시 심미성과 사회성, 예술과 정치,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부유하는 벤야민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벤야민의 모든 사유와 글쓰기는 근본적으로 심미성과 사회성 사이에서 부유한다. 그런 부유의 특성을 양가적 특성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철학적 상상력, 개념적 형상화, 사유이미지처럼 복합적으로 명명될 수도 있다. 철학적 상상력이란 철학과 문학이 서로 결합될 경우에만 가능하며, 그런 언어 조합의 이름이 붙여지는 글은 철학 혹은 문학이라는 각각의 고유영역에서는 부조리하고도 모순적인 글로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각각의 고유영역을 위협하는 기괴하고 일그러진 글로 여겨진다.”(35쪽)

    우리는 대중매체사회에 대한 담론에서도, 역사철학테제에서도 벤야민의 야누스적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6)에서 파시즘 세력의 매체 사용을 ‘정치의 심미화’로 규정하고, 자신을 포함한 마르크스주의적 매체 이론을 ‘예술의 정치화’로 자리매김한 점. 그리고 마지막 작품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1940)에서 신화(원시림)의 세계와 역사(계몽, 이성, 진리)의 세계를 대립시키고 ‘모더니티 신화’를 비판함과 동시에 구제하려고 시도한 점이 그러하다. 신화의 부정적 이미지들은 그리스 비극에서 표현되고 있는 죄와 속박의 연쇄, 비극적 운명의 질곡, 심리학에서 말하는 반복강박, 전체주의 국가들이 표방하고 이용하는 신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벤야민은 예술을 현실을 은폐하는 상부구조의 이데올로기적 생산물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또한 현실의 단순한 반영물로 여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진행되는 와중에서 그런 상황을 비판하거나 벗어나게 해주는 희망의 계기를 ‘예술의 자율성’에서 찾았다. 이런 관점은 아도르노가 『미학이론』에서 말한 “예술은 자율성과 사회적 사실이라는 이중적 특성을 지닌다”는 표현에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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