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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 병신체에 대한 단상-우리시대의 패션언어를 찾아서

 

삼일절에, 보그를 읽는 시간

 

핸드백 박물관에서 작품들을 소개하며 보그 병신체란 표현을 쓰니 사람들이 막 웃는다. 나로선 유쾌하지 않다. 입맛이 아주 쓰다. 예전부터 고치자고 이야기를 하고 논평을 해도 패션 매체들은 바뀌질 않았다. 영어 사대주의에 빠진 이 나라 매체들의 속성이었다. 패션에서 출발한 병신체, 즉 보그 병신체란 영어나 불어를 소리나는 대로 적고 토씨만 한글로 적는 국적불명의 언어를 비꼬는 말인 것이다. 보그가 대표적인 패션 매체이기에 이름이 붙은 것일 뿐, 엘르나 하퍼스 바자도 별 다를바 없다. 요즘은 이런 패션 저널리즘의 관행이 여행이나 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매체로까지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스프링 시즌의 릴랙스한 위크앤드, 블루톤이 가미된 쉬크하고 큐트한 원피스는 로맨스를 꿈꾸는 당신의 머스트 해브. 어번 쉬크의 진수를 보여줄 모카 비알레티로 뽑은 아로마가 스트롱한 커피를 보덤폴라의 큐트한 잔에 따르고, 홈메이드 베이크된 베이글에 까망베르 치즈 곁들인 샐몬과 후레쉬 푸릇과 함께 딜리셔스한 브렉퍼스트를 즐겨보자.

 

 

지나친 외래어를 빼고 다시 써보자. 다가오는 봄, 여유있는 주말 데이트를 위해 청색의 귀여운 원피스를 골라보자. 도시적인 매력은 역시 모카 비알레티(이건 고유명사)로 뽑은 향이 좋은 커피에 집에서 갓 구은 베이글빵과 치즈 신선한 야채로 아침을 채우는 것도 좋다.

 

 

“(무심한 듯 쉬크하게) 보그 스타일을 매치하고 싶은 워너비들이 줄곧 따라하곤 하는 클리셰로 유명하다. 이는 앤 드뮐뮈스터의 모델들처럼 풍부하고 명료한 비주얼을 보여주었던 보아가 보그 화보 스탠바이 도중 했던 인터뷰 익스프레션으로, 실제로 보아가 한 말인지 자체적인 피쳐링이 가미된 말이지는 은밀한 시크릿. 다만 노멀한 스타일로 편지를 보내와도 철저한 보그만의 오소독스 스타일로 리에딧하는 컨벤션은 당시의 편집장이었던 이명희 에디터의 독특한 테이스트라나. 거기에 엣지 있는, 머스트 해브같은 이미엄도 트렌디한 보그 피플이라면 잊지 말아야 할 소품!

 

한국어로 바꿔본다. ‘무심한 듯 쉬크하게’란 보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사용하는 문구다. 이는 가수 보아가 화보 촬영 중 기자와의 대담 시간에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다만 평범한 말이나 어구도, 보그만의 독특하고 스타일로 재편집하는 관행은 당시 편집자였던 이명희씨의 고집스러움 때문이다.

 

줄여서 쓸 수 있는 것도 쓸모없이 외래어를 남발하며 늘여놓은 것도 많다. 한국어로 번역해도 일대일의 의미관계가 성립되는 단어조차도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하긴 보그 병신체만 있는건 아니다. 흔히 먹물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인문병신체도 있다.

 

“나의 텔로스는 리좀처럼 뻗어나가는 나의 시니피앙이 그 시니피에와 디페랑스 되지 않게 하므로써 그것을 주이상스의 대상이 되지 않게 콘트롤하는 것이다” (blog.naver.com/borderland/130082357319 ‘인문학이라는 제국의 언어’에서 인용)나는 병신체를 쓰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공통된 심리적 특성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언어가, 의미의 혼돈 때문에 번역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자국어로 깔끔하게 담론을 만들 가능성도 줄어든다. 학자들의 게으름도 한몫 한다. 학계가 공통의 기반을 만들고 그 위에서 언어행위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런 게 약하다. 예전 키노란 영화잡지가 있었다. 그땐 영화사를 다닐 때였고 막 영화학도로서 열심히 원서 읽어가며 공부하고 현실에서 제작을 배울 때였는데, 키노잡지에 나오는 표현들이 참 멋있어 보였다. ‘영화란 미적으로 분절화된 텍스트를 감독 특유의 들뢰즈적 미장센의 미학과 정치학적 사유를 통해 담는…..‘ 뭐 이런 문장들이다. 사실 꼼꼼하게 읽어보면 이해는 가는데, 되게 있어 보였다. 그 시절엔. 이런 식의 문장들이. 괜히 있어 보이고, 내가 철학자의 책을 ‘너네들 보다는’ 읽고 사는 개념남이다. 뭐 이런 얄팍한 자부심도 있었던거 같다.

 

보그는 죄가 없다, 우리들이 문제인거지
세월이 가면서 알게 되었다. 쉽게 풀 수 있는 단어를 굳이 어렵게 쓸 필요는 없다는 것과, 그런 어려운 학문용어를 자꾸 습관적으로 쓰는 건 내가 공부를 했다는 걸 티내고 싶어하는 욕망의 일환일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내가 라캉을 좀 어렵게 읽어봐서리….’ 뭐 이런거다. 사실 보그(Vogue)는 죄가 없다. 세계 각국에 유행에 대한 생각을 퍼뜨리는 매체일 뿐. 도시와 패션, 그 속에서의 삶을 보그만큼 애정을 갖고 다뤄온 매체도 없다. 보그는 각 나라에서 그 나라의 패션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발행된다. 패션은 그 나라의 시대정신의 단면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여기에 합당한 자국어가 없다면 몰라도, 지금 한국판 보그가 보여주는 문체는 비판의 여지가너무 많다. 페이스 북에 관련 내용을 올렸더니, 보그 병신체 대신, ‘청담유려체’란 표현을 쓰자고 하신 분도 있다. 댓글의 댓글이 이어졌다. 페이스 북 친구 분이 올려준 논평을 올려본다.

 

“단순하게 말하면 ‘한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자신이 그 개념을 내적으로 변환하지 못하는 거죠.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 모국어를 잘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망각한 채, 외국을 갔다왔다는 먹물주의를 강조하다 보니 생긴 폐해. 번역이라는 것은 타국어를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닌, 개념을 새롭게 재정리해서 모국어로 표현하는 것인데 번역가들이 모국어인 한국어를 못하니, 일어중역이나 되도 않은 의역으로 책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죠”

 

신학자이자 청아람 아카데미의 기획자이신 양희송 선생님께서 부족한 글에 논평을 해주셨다 함께 올려본다. “언어가 패거리 내부의 폐쇄회로를 따라 겉돌고 있거나, 은근한 자기과시 목적에 봉사하는 외에 딱히 소통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병신체’란 용어가 장애인 비하적 뉘앙스를 강하게 갖는다는 문제만 뺀다면, 우리 언어의 공허함에 대한 찰진 비판으로 받을만하다.” 사실 보그 병신체란 표현을 내가 만든것도 아니고, 이미 꽤 오래전부터 떠돌던 단어를 소개한 것일 뿐이다. 말씀하신 장애인에 대한 비하적 뉘앙스를 수정할 수 있는 다른 표현이 나와도 멋질 듯 싶다. 페북의 다른 친구분이 소개한 청담 유려체도 좋긴 한데, 이것은 특정 지역의 정서를 폄훼할 수 있어서 곤란하지 싶다. 청담동이 모든 잘못의 온상처럼 보여질 수 있으니까.

 

언어의 삶도, 사람과 같이 생사화복을 맞는다. 언어학자들이 주장에 따르면 하루에도 언어가 평균 100개 이상이 죽어간단다. 한글또한 이 운명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금처럼 우리가 언어를 쓰다간 그 날은 더욱 가속화될 수 밖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 패션의 언어를 만들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우리의 시각으로 서구의 패션 개념을 해석할 여지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삼일절에 유독 보그의 ‘트랜디한’ 문구들이 눈에 걸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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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패션계 외래어 남용… 우리나라 고유의 유행과 멋, 담아낼 수 없어요”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씨
입력시간 : 2013.03.13 20:16:08
최근 한 패션 블로그의 칼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한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됐다. ‘보그 병신체에 대한 단상-우리시대의 패션언어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이 글은 패션을 삶의 양식으로 보고 전시, 공연 등의 문화 콘텐츠로 담아내는 ‘패션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김홍기(41)씨가 썼다. 칼럼은 대표적인 패션 전문지를 인용해 패션 저널리즘의 외래어 남용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예컨대 ‘이번 스프링 시즌의 릴랙스한 위크엔드, 블루톤이 가미된 쉬크하고 큐트한 원피스는 로맨스를 꿈꾸는 당신의 머스트 해브’처럼 영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고 조사만 한글로 적는 국적불명의 언어는 ‘다가오는 봄, 여유 있는 주말 데이트를 위해 청색의 귀여운 원피스를 골라보자’ 식으로 바꿔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 스스로 “장애인을 비하하는 뉘앙스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오래 전부터 떠돌던 ‘보그 병신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제목으로 내세운 글을 공개적으로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11일 만난 그는 자신은 한글 옹호론자가 아니라며 “공멸 위기에 놓인 패션계의 의식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보그’는 오늘날 패션 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한 중심축이죠. 뉴욕에서 창간해 세계 각지의 고유 패션을 담아낼 수 있는 나라별 판본으로도 나오고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처럼 외래어를 나열한 한국어판 보그가 과연 우리나라 고유의 유행과 삶의 방식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서양복식사를 중심으로 발달해 온 패션계의 특성상 한글로 완벽하게 옮기기 어려운 영어, 불어 표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는 “패션계가 그만큼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물론 저도 ‘스타일‘이나 ‘핏(fit)’을 한글로 바꾸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색채의 경우 영어만큼 다양한 한글 표현이 없다면 그건 우리말로 정성스럽게 옮기고 대조해 관련 분야를 성장시키는 방향성을 못 만들었다는 의미 아닌가요? 새로운 어휘가 늘면 표현 방법도 다채로워지고 생각도 깊어지는 법이잖아요.”

한 대형 백화점의 아동복 구매 담당으로 5년 가까이 일하던 그가 패션 큐레이터의 길에 들어선 계기는 영국 런던에서 접한 ‘패브릭 오브 비전’이라는 전시가 결정적이었다. 미국의 패션 칼럼니스트 앤 홀랜더가 기획한 행사로 옷의 주름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미감을 풀어낸 전시였다. 이를 계기로 “패션 강국에는 있는 패션 큐레이터가 한국에는 왜 없을까”를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패션의 흐름을 돌아본다는 게 결국 미의 기준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구체화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도 중요한 복식사는 간과하고 마케팅만 강조하는 게 한국 패션계의 현주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아직 보편화하지 않은 패션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한국에서 정착시키기 위해 하고 싶은 일도 많다.현대미술과 패션을 결합한 전시회와 유명 디자이너의 생애를 담은 영화 기획은 물론 패션 전문 도서관도 열고 싶은 게 그의 꿈이다.

결국 그에게 패션은 “인간으로 하여금 현재가 소중한 것임을 알려주는 선물”이다. “새롭고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을 길러내는 것이 당대 예술의 관건이라면 내가 살아있음을 매일 확증하게 하는 패션은 그 임무를 달성하게 하는 첫 번째 예술 장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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