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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켄야,디자인의 새로운 사고를 정립하다

하라켄야,디자인의 새로운 사고를 정립하다

 

윌리엄 모리스가 주창한 예술 공예 운동은 기계화 되어가는,

획일적인 생산품에 반기를 들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 디자인의 가치에 대해 다시 되짚어 본 운동이었다.

 

바우하우스 또한 사회 민주주의적 논리를 배경에 깔고,

순수한 조형의 원리를 탐구하고 되짚어본 운동이었다.

둘의 흐름 모두에는 [디자인이 세상에 대해 지니는 가치]

즉,경제-돈의 흐름과는 별개로 디자인이 세상에 미칠수 있는 순수한 이념들을 생각해본

이상주의가 배어 있다.

 

그러나 산업화의 급속한 물결은 디자인을 경제의 흐름과 보다 밀접하게 연관시켜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요소,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시각적인 비주얼들을

보여주는 요소로 만들었다.

 

경제의 풍요와 더불어 디자인은 그런 경제의 흐름의 요구에 맞추어 끊임없이 새로운

디자인들을 쏟아내며 소비를 붇돋우는 장치로 점차 더 성장을 거듭해 나갔으며,

디자인 경영이라는 말도 “디자인이 돈을 벌어다 준다”라는 개념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풍요의 시대,소비의 시대가 점차 지나가고,

환경이라는 문제가 시대의 화두 속에 새롭게 포함되게 된 변화하는 이 시대에

디자인은 대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가 ?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단지 스타일적인 트렌드를 바꾸는 것이 아닌

그 이면의 철학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하라켄야는 지금이야말로 디자인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디자인의 미래,비전을 다시금

재정립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햅틱,엑스포메이션,그가 세운 디자인 개념들은 단순한 [디자인 방법론]

의 역할 보다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사고의 전환]의 역할을 한다.

그는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디자인의 가능성에 대해 탐구하고 디자인과 사회의 관계를 다시금 되짚어 본다.

어쩌면 예술 공예운동,바우하우스에서 맥이 끊어졌던

디자인의 이상적인 가치에 대해 다시금 되짚어 보는 맥을,그가 잇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햅틱,오감을 깨우다

*햅틱이란 일반적으로 촉각과 관련된 혹은 촉각을 즐겁게 한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사물을 ‘느끼는 방법’에 대해 실마리를 풀어 나가는 태도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흔히 디자인적인 방법론인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한 접근이 아닌 어떻게 느끼게 하는가 하는 측면에서

인간의 감각을 창조적으로 각성시키는 ‘느끼는 방법의 디자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햅틱의 예시 [바나나의 생생한 감촉이 느껴지는 패키지 / 천으로 만든 병원 사이니지]

 

 

엑스포메이션,세계를 미지화 하다

정보를 쉽게 획득하기 쉬운 현대사회에서 현대인은 입버릇처럼 ‘알아,알아’

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정보에 접촉했다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모르는 지를 깨닫게 한다.

그 방법을 지금까지의 인포메이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엑스포메이션이라고 명칭을 정하였다.

ln에 대비되는 ex,information에 대비되는 exformation.

 

이것은 익숙한 사물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서

그 사물의 새로운 가치를 깨닫게 하는 사고적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하라켄야는 무사시노 미술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하나의 대상을 정하고 엑스포메이션-대상을 미지화 하는 프로젝트를 실제로 진행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아래의 알몸 엑스포메이션이다.

 

>팬티 프로젝트.

익숙한 물건들에 팬티를 입혀 본다. 갑자기 부끄러운 느낌이 든다.

단지 팬티를 입힘으로서 물건들이 알몸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사물의 신체화를 통해 알몸의 새로운 인지를 가능하게 한다.

> 순정만화를 누드화 하다

>엉덩이 캐스터네츠

 

+

 

이러한 시도는 어쩌면 당장 [잘 팔릴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과는

관련이 없을수도 있다.

그의 이러한 시도의 이면에는 디자인을 단순히 경제활동과 관련된 부속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생활을 바꾸고 의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깃들어 있다.

그는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이 연구한 인문학적 지식들을 디자인이라는 얼개 속에 포함시켜,

디자인의 가치와 역할을 더욱 확장시키고 그 깊이를 더해간다.

 

햅틱과 엑스포메이션이 디자인의 새로운 사고를 제시하고 그 사고를 보여지는 예시적인 결과물로

세상에 내어보였던 일종의 프로젝트성이었다면,

이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좀더 밀접하게 연관된 부분에서 그의 사고를 접목시킨 결과물이 있다.

 

[무지]는 그의 디자인에 대한 세계관이 녹아들어가 있는 브랜드이다.

“브랜드”의 초기 개념은 물건을 보다 “잘 팔기”위해서,사람들의 머릿속에 그 제품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자

만든 개념이 브랜드이다.

따라서 브랜드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상업적이고 경제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하라켄야는 이 브랜드에 철학을 불어넣어 우리가 행하는 “소비”라는 행위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아트디렉터로서의 하라켄야는 무지의 비전을 세우고,사회에 자신의 비전을 커뮤니케이션 하였으며

(광고 등의 방법으로)

그의 이러한 시도는 현재 진행형으로 지금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무지,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보통 브랜드가 추구하는 것은 ‘이것이 좋다’ ‘이것이 아니면 안되겠다’

라는 강한 기호를 갖게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지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으로’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데 주력한다.

“-이”는 개인의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강한 태도가 느껴진다.

‘-으로’에는 개인의 의지를 포함하여 세계 전체의 미래를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억제하는 이성이 들어 있다.

‘나를 위한 소비’ + ‘나 이외의 세계를 배려하는 소비’

인간이 살아가는 이상 소비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소비의 대상이 브랜드이다.

어차피 소비라는 행위를 피할 수 없다면,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 소비,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의 생활과 정신세계를 좀더 풍요롭게 하는 소비가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물음을 하라켄야는 가졌고 그에 대한 철학이 무지에 온전히 담겨 있다.

 

무인양품은 최적의 소재와 제조법,그리고 형태를 모색하면서 새로운 가치관이나

미의식을 만들어내며,쓸데없는 생산과정을 철저하게 생략하되 풍요로운 소재나 가공 기술은

차근 차근 도입한다.

궁극적으로 풍족한 저 비용,가장 현명한 저가격대를 실현하는 것.그것이 무인양품의 방향이다.

 

—————

 

하라켄야가 대단한 점은

 

디자인의 사고 정립 -> 실질적인 디자인 프로젝트를 통해 검증

-> 사회와 연관된 직접적인 경제활동 참여로 실질적으로 사회에 자신의 사고 침투

 

이런 모든 점들을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통해 훌륭히 수행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디자이너로서 일을 해보면 알겠지만,보통 개인작업과 상업적으로 돈을 버는 작업은

그 색깔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것은 “돈을 벌기 위한”디자인 작업에서 자신의 색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디자인의 사고를 정립한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당장 멋지고 예쁜 디자인을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도 시간이 없는데

왜 그런 것을 고민해야 할까 ?

 

우리는 내일 당장 회사에 가면 눈앞의 일을 처리해야 하는 직장인이다.

그러나 매일 매일 급급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도 먼 내일의 비전이 필요하다.

다소 이상주의적이고 다소 멀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내부의 철학과 이념들이

구슬같이 흩어져 있는 일상의 일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특별한 끈이 된다.

 

한국사회에서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역할은 어쩌면 다소 침체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럴 때 일수록 디자인이 가진 근본적인 에너지를 믿고

그 개념을 되짚어 보고 생각하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 빨리]라는 우리의 국민성이 우리의 경제를 부흥시킨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디자인에 대해 좀더 시간을 갖고 그 원론부터 다시 점검해 보는 느릿한 사색의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닐까.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디자인은 그렇게 생각할 가치가 있으며,

충분히 사회속에서 큰 역할을 담당해낼 수 있다.

라는 디자인에 대한 순수한-어쩌면 이상주의적인 믿음을 다시금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디자이너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단순히 비주얼적인 것만 다루는 디자인이라면 그 수명은 길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라켄야가 [디자인의 디자인] 서두에 적어 놓은 것처럼

[디자인을 언어화 하는 것은 또 다른 디자인이다]

꾸준한 사색과 생각을 통하여 자신만의 디자인관을 만들어내고 발전시킨다면,

디자이너의 수명은 끝이 없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하라켄야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가 된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tarfirm&logNo=130129899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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