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남기기

웹 브라우저의 내러티브, 몽타주, 그리고 혼종성

웹 브라우저의 내러티브, 몽타주, 그리고 혼종성

– 몽타주 양식을 재매개하는 웹 브라우저의 내러티브적 속성과 혼종성

<초록>

본 연구는 “인터넷 정보 문화”라 불리는 현대 정보사회에서 그 중요성을 함의하는 웹 브라우저에 대해 이론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웹 브라우저의 내러티브적 속성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대표적 전통 내러티브 장르로서 영화의 몽타주 기법에 대한 웹 브라우저의 재매개 양상 과정을 분석한다. 몽타주 기법을 크게 2 가지-시간적 몽타주와 공간적 몽타주-로 나누어 그 의미를 정교화하고, 이를 웹 브라우저 문화양식에 투영하고자 한다. 두 번째로, 몽타주 양식에서 자연스럽게 파생하는 웹 브라우저의 혼종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앞에서 제시한 시,공간적 몽타주의 속성에서 귀결맺는 결과로서 웹브라우저의 혼종성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유사개념들-리믹싱, 전유, 차용-사이의 의미차이를 분별해내고, 웹브라우저의 혼종성에 대해 심도 있게 알아본다.

주제어 : 웹 브라우저, 내러티브, 몽타주, 혼종성, 재매개, 하이퍼매개성

1. 문제의 제기

오늘날 웹 브라우저는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주요 테크놀로지이다. WWW을 통해 전 세계인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 와든 ‘연결connect’될 수 있다. 라인골드(H.Rheingold)는 신체적으로 방에 고립된 채로 지내도, 같은 생각 또는 다른 생각의 영혼들과의 월드와이드적 집합체와 연결되는 ‘가상공동체(virtual community)’의 등장을 축복한다. 이를 휴머니티와 테크놀로지의 놀라운 결합이라고 극찬한다.1)

기존 연구에는 인터페이스에 대한 관심보다는 콘텐츠에 대한 이해 방식 또는 미디어 수용양상에 대한 관점이 두드러졌다. 이에 이재현은 인터페이스 자체에 대한 관심의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대상-콘텐츠, 정보 등-을 읽는 독자, 관객, 사용자의 심신적 태도, 관점, 행동에 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매개는 다름 아닌 ‘인터페이스’라고 언급한다.2)

마노비치는 특히 ‘컴퓨터로 이루어진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를 강조하기 위해 ‘문화적 인터페이스(cultural interface)’라는 용어를 고안했다. 이는 텍스트, 사진, 영화, 음악, 책과 같은 지배적인 문화자료들을 디지털 형식으로 코드화하여 컴퓨터 기반으로 제공함으로써 상호작용 가능한 형식을 주는 미디어 양식이다. ‘문화적 인터페이스’의 역할은 결국, 전통문화를  디지털 형식으로 제공하는 일종의 ‘미디어 기계machine’이다. 곧, ‘컴퓨터화된 미디어computerized media’이다.3)

이에 HCI(human computer interface) 양식으로서 웹 브라우저에 대한 논의는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첫 째로, 정보화 시대에 모든 대상(things)은 그 자체로 ‘정보적 성격’을 띈다. 냄새, 시각 대상, 소음 심지어 맛 마저도 ‘하나의 정보’ 대상이다. 이에 ‘정보화informatization’는 산업화industrialization과 개념적 범주를 달리하는 개념이기 보다, 물리적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이 추상적이고 개념적으로 ‘정보’로 ‘읽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웹 브라우저는 순수한 정보적 대상‘만’을 담는 그릇이다. 그렇기에 웹 브라우저 인터페이스에 대한 연구는 ‘정보’ 자체를 담는 담지체로서의 ‘매체media’에

대한 직접적 연구가 될 테다. 두 번째로, 웹 브라우저는 현대적 문화 흐름을 반영하고 선도하는 매개이다. 여기서 현대적 문화 흐름은 포스트 모더니즘적 현상을 의미하는데, 바로 ‘혼종서hybridity’가 그것이다. 웹 브라우저 인터페이스는 이미 그 자체로 ‘혼종적’ 성격이 강하다. 마노비치가 언급하는 문화적 인터페이스cultural interface에서 ‘문화적cultural’이라는 단어 역시, 컴퓨터 미디어가 기존의 문화 형식을 ‘혼종적으로’ 접하게 해준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는 영화 전통 문화형식, 책 전통 문화항식, HCI 문화형식 사이의 ‘충돌’이 발생하고, 충돌은 서로 간의 화해, 타협, 차용의 산물을 만드는데, 그것들은 특히 ‘혼종성hybridity’이라는 성질을 내재한다. 이것이 마노비치가 제시하는 뉴미디어의 새로운 언어new language이다.4)

인터페이스의 ‘혼종성’에 대한 논의에 앞서 오늘날 미디어의 특징을 ‘미디어 자체의 특성에 기반을 두어’ 크게 3가지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첫 째로 재매개이다. 재매개remediation는 인터페이스 양식, 표상관습, 사회적 인식 등을 차용하거나 이를 개선하는 미디어 논리이다. 인터페이스 양식을 재매개하는 예는 컴퓨터 윈도우 인터페이스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인터페이스 양식의 관점에서 컴퓨터 윈도우는 ‘페이지page’ 양식을 따르는 동시에, 표상관습의 시각에서는 사실주의 표상을 재매개한다. 사회적인식의 예는 DMB가 스스로를 방송이라 부리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하나의 미디어와 다른 미디어 사이의 ‘관계적 맥락’이다. 관계적 맥락은 전통양식에 대한 존중 혹은 경의를 표하거나, 전통양식과 경쟁하는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재매개는 미디어 관계의 ‘연속론적 시각’을 함의한다고 볼 수 있다. 기존 미디어의 관습과 새로운 미디어의 고유양식이 결합하면서 뉴미디어 언어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또한 ‘혼종적 성격’을 보인다.

두 번째로 ‘연계’이다. 여기서 연계가 의미하는 바는 하드웨어적 결합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본체를 케이블을 이용하여 TV에 연결하여 TV모니터로 시각경험을 충족시킬 수 있다. 또한, 프로젝터에 노트북을 연결하여 개인 미디어로서 노트북을 대중 미디어로 변환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하드웨어적 연계는 미디어 자체의 속성을 변화시킨다.

마지막으로 융합이 있다. 하나의 시스템 내에 ‘다른 미디어의 기능’을 삽입하는 기능적 확장 혹은 다기능화를 융합이라 칭한다. 예를 들어, MP3플레이어는 본래 음악듣기 기능을 위해 고안되었으나, 오늘날 MP3플레이어는 음악듣기 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 기능을 가지면서 ‘다기능화’의 길을 걷고 있다.5)

필자는 ‘혼종성hybridity’에 대한 위의 3가지 관점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자 한다. 그것은 콘텐츠 자체의 질료적 성격으로서의 ‘혼종성’이다. 인터페이스 양식 간, 하드웨어 간, 미디어 기능 간 ‘혼종’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영화, 음악, 패션 등 콘텐츠 자체도 ‘혼종성’을 띈다. 특히, 순수한 정보공간으로서 웹 브라우저 내에 하나의 ‘흐름’으로 보이는 ‘혼종성’에 연구는 정보로서의 콘텐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이정표 역할을 하리라 본다.

재매개를 착안했던 볼터는 미디어 융합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회의주의적 시각을 견지하기도 하였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아마 하나로 융합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생각은 융합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의 예측일 뿐이다.”6)고 말한다. 여기서 볼터가 제시하는 ‘융합’의 개념은 앞에서 언급했던 이재현의 ‘융합’보다는 더욱 더 넓은 개념으로서 보다 추상적인 의미로서, 0과 1의 이진법으로 해체되어 다시금 혼합되는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을 뜻한다. 혼합한다는 의미에서 필자는 ‘혼종성’의 개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시도하여,

더 나아가 필자는 본 연구가 웹 인터페이스와 영화 인터페이스의 간극을 줄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데이터베이스 대 내러티브의 갈등 관계의 화해 지점을 점쳐보고자 한다.

2. 내러티브로서의 정보 공간

“웹 브라우저의 창이 영화와 TV화면, 미술관의 벽, 도서관과 책을 모두 한꺼번에 대체하면서 새로운 상황이 나타나게 된다. 과거와 현재의 모든 문화가 컴퓨터의 인간-컴퓨터 간 인터페이스에서 컴퓨터를 통해 걸러져 나오게 된 것이다.”7)

웹 브라우저 인터페이스에 대한 이해는 현대 HCI 지형도를 그려보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마노비치는 VRML(Virtual Reality Modeling Language)에서 “존재론이 인식론과 하나가 된다. ontology is coupled with estemology”8)고 말한다. 이는 곧, 내가 보는 대로 세상이 생긴다는 의미를 담는다.9) 이러한 관점에서, 웹 브라우저를 재해석할 수 있다. 정보 시각적 차원에서 웹 브라우저는 VRML처럼 ‘완전하게 사용자의 지각체계를 압도하지 못한다.’ 따라서, (아직은) 그 자체로 존재적이지도 인식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그것은 정보와의 만남이라는 디지털 시대 고유의 ‘하나의 경험an experience’을 구성한다. 웹 브라우저를 이용하여 정보를 탐색하는 사용자는 ‘순수한’ 정보의 바다에서 서핑surfing한다. 따라서 마노비치의 문장을 다시금 웹 브라우저의 ‘하나의 경험’에 적용해 볼 경우, 다음과 같이 재해석이 가능하다. “내 경험을 통해 내가 보는 대로 세상이 생긴다.”

인간 고유의 영역에서, ‘하나의 경험’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의 경험’은 물리적 시공간에서 인간이 지각하고 감각하는 무엇이다. 이는 그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의미를 또한 달리한다. 그 대상은 사건이다. 사건은 인간 경험 그 자체를 구성하는 필요충분적 요건이다. 따라서 ‘하나의 경험’은 곧 연속된 사건의 나열, 즉 사건의 연속체라 할 수 있다. 사건과 사건이 모여서 비로소 온전한 경험을 구성한다. 웹 브라우저에서 정보 읽기 또한 하나의 사건이다. 그리고 그 사건은 정보화 시대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정보화 사회를 경험하는 인간은 ‘지식 보철’에 의존할 만큼, 정보 그 자체의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수 없다.10) 마치 웹 브라우저라는 거미줄에 걸려든 먹잇감과도 같다.

따라서, 웹 브라우저 경험은 사용자에게 하나의 사건이다. 우리는 흔히 사용자가 웹에서 정보를 추구하는 과정을 우리는 서핑surfing한다고 일컫는다. 이는 정보 바다의 파도를 타는 듯 한 경험을 하는 사용자에 대한 일종의 은유이다. 필자 또한 여기에 은유를 더한다. 그리고 이 은유는 은유적 표현의 사실화로 귀결되리라 본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웹에서의 정보추구행태는 곧 하나의 영화 내러티브 구축과도 같다. 쉽게 말해, 웹 브라우저를 탐색하는 동안의 웹 페이지 각각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개개의 쇼트라고 은유할 수 있다. 정보탐색자는 정보를 찾기 위해 브라우징browsing하고 탐색searching하는 과정에서 연속된 웹 페이지를 접한다. 이를 일렬로 나열해 보면, 이는 곧 쇼트들의 연속과도 같다. 쇼트들이 이어지는 과정이 아닌, 이어진 결과‘만’을 추출해서 시각화해보면, 이는 내러티브를 닮았다. 결과론적으로 정보추구행위자는 ‘자기만의 선형적 이야기’를 구축한다. 분절된 웹 페이지 쇼트들이 모여서 ‘하나의 경험’을 구축하고, 그 결과 ‘하나의 의미’를 형성한다. 이는 영화에서 흔히 언급하는 몽타주의 의미형성과정과 같다. 정보공간이 단지 정보 파편들의 한 복판이 아니라,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는 과잉하는 정보들이 모여서 ‘하나의 내러티브’로 환원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영화의 몽타주 이론에 대한 개괄적 이해를 도모하면서, 내러티브화하는 정보공간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단지 전통적인 인터페이스 양식으로서 영화를 웹 브라우저로 재매개할 뿐만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그것이 어떻게 ‘내러티브’로 의미화 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으리라 본다.

3. (시간적) 몽타주로서의 정보공간

사용자가 웹 브라우저 페이지를 통해 정보공간과 마주할 때, 사용자는 소위 ‘정보 내러티브’를 경험한다. 사용자는 웹 브라우저를 실행하고 첫 페이지와 대면한다. 정보추구행위자는 첫 페이지에서 정보 브라우징browsing을 하고 링크를 거쳐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이러한 ‘넘김의 행위’는 마치 영화 장면, 장면이 넘어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이는 사용자의 정보 접근 목적에 따라11) 다양하지만 연속적이고 지속적으로 웹 브라우저에서의 정보추구행동을 지배하는 ‘내러티브로서의 정보공간’을 경험하는 사용자 행태이다.

시간적 순서에 따른 ‘정보 데이터’를 일렬로 나열하면, 하나의 ‘정보 내러티브’ 그리기가 가능하다. 여기서 ‘내러티브’라는 단어는 정보 나열 자체를 정보와 직접적으로 대면했던 사용자 ‘개인’의 시각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림 43) 내러티브로서의 웹 브라우저 경험의 예

위의 그림은 ‘내러티브로서의 정보공간’에 대한 하나의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정보추구자는 첫 페이지로 iGoogle과 면한다. 여기서, 당시 사회적 이슈거리였던 ‘이란 시위’에 대한 타임지의 기사를 눈여겨보고 ‘클릭’한다.(scanning) ‘클릭’은 링크로서 ‘넘김의 소리’이다. 그리고 2번째 웹 페이지에서 사용자는 타임지 사이트의 관련 기사와 만난다. 기사를 읽던 그는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정보를 얻고자, 그리고 동영상 정보를 통해 ‘스펙터클’을 느끼고자, 타임지 하단의 CNN 사이트를 클릭한다.(searching) 세 번째 페이지는 CNN 사이트이다. 관련 기사가 생각보다 짧게 등장한다. 이에 정보추구자는 잠시 실망하지만, 우연하게도 최근 세계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마이크로블로그 ‘트위터’ 박스와 만난다.(encountering) 평소에 관심을 두었던 그는 이를 클릭한다. CNN 기자들의 트위터 목록이 네 번째 페이지에서 등장한다. 몇몇 CNN 기자를 익히 알았던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기자의 이름을 탐색한다. (browsing) 그리고 눈에 띄는 기자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바로 클릭한다. 마지막 페이지는 그 기자의 트위터이다. 정보추구자는 자신 또한 이 기자의 트위터를 팔로우follow하려고 클릭하고자 한다.

단순하게 개인화 페이지였던 iGoogle에서 출발하여, 정보의 보고라 불리는 주간지 사이트타임지를 지나, 방송뉴스 사이트인 CNN에 이르고, 결국에는 커뮤니티와 블로그의 중간적 성격을 지니는 트위터에 까지 도달한다. 이를 일렬로 나열하면, 하나의 ‘내러티브’가 형성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의 특징은 ‘시간적 나열’이고, ‘시간적 병치관계’이다. 시간적 전후 관계를 통해 ‘하나의 의미’를 형성하고 있다. 곧, 시간에 따른 정보 나열을 통해 ‘정보공간의 내러티브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영화의 (시간적) 몽타주와 흡사하다. 시간적 몽타주 역시 그 특징을 시간적 전후관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웹 브라우저에서의 정보경험을 ‘그 과정적 측면에서’ 몽타주와 연결 지을 수 있다.

1) 영화에서의 (시간적) 몽타주

몽타주라는 개념은 본래 영화 영역에서 사용하던 개념이다. 몽타주 개념의 선구자 푸도프킨(V.I.Pudovkin)은 “영화예술의 기초는 편집이다.”12)라고 말했다. 영화학자 자네티(L. Giannetti)는 가장 기계적인 차원에서 편집이란 불필요한 시간과 공간을 제거하는 것으로서 쇼트와 쇼트 사이를, 씬과 씬 사이를 접속시키면서, ‘관념들 간의 결합association of ideas’를 만든다고 말했다.13) 이처럼 영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편집은 필요충분조건이다.

몽타주는 단순하게 쇼트와 쇼트를 이어붙인다는 의미의 편집(editing) 개념에서 더욱 발전하여 쇼트와 쇼트 사이의 ‘의미관계’에 천착한다. 보드웰과 톰슨은 『영화예술 Film Art : An Introduction』에서 몽타주의 개념을 보다 자세히 설명한다. 그들은 기존의 편집 개념과 차별화하기 위해 몽타주 개념을 2개로 명확하게 분류한다. 하나는 앞에서 제시한 ‘편집과 동의어’로서의 몽타주이다. 이는 쇼트와 쇼트의 연결 자체를 의미할 뿐이다. 주목해야 할 개념은 두 번째이다. 1920년대 러시아의 영화작가들에 의해 개발된 편집기법으로서, 쇼트들 사이의 역동적 (종종 비연속성까지) 관계와 하나의 영상 자체는 부재하는 관념을 창조하기 위한 이미지들 간의 병치로서 몽타주가 그것이다.14)

특히 푸도프킨은 구성적 편집constructive editing이라 일컬어지는 것에 대한 주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각 쇼트는 새로운 관점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쇼트의 병치juxtaposition를 통해서만이 새로운 의미가 창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바로 몽타주라 불리는 주제적 편집을 위한 주요 이론적 전제이다. 몽타주는 단순하게 쇼트와 쇼트를 연결 짓는 결과물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와 의미를 생성하는 작업으로 이해해야 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15) 이에 앤드류(Dudley Andrew)는 <The Major Film Theories : an Introduction>에서 영화의 쇼트는 건축에서의 벽돌처럼, 세포와 같은 것이고, 영화는 이러한 독립된 세포들이 생명을 불어넣는 원칙들을 받아들일 때에만 창조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포들에 생명을 부여하고 완전한 영화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몽타주’라고 제시한다.16)

그림 44) 쿨레쇼프 효과

쿨레쇼프의 실험 또한 몽타주 이론을 이해하는데 아주 유효하다. 그는 먼저 한 배우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클로즈업하여 촬영했다. 이를 수프 그릇의 쇼트와 병치하여 연결시켰다. 또는 여자의 시체가 담긴 관의 쇼트를 바로 다음 쇼트에 삽입했다. 이 같은 쇼트의 병치적 연결에 따라, 관객에게 각인되는 감정은 달리했다. 전자의 경우, 관객은 배우가 배고프다고 생각했고, 후자일 때 관객은 주인공이 슬픔의 감정에 더욱 가깝다고 여겼다. 또한, 전혀 다른 시간에 다른 공간에서 촬영된 앞의 쇼트와 뒤의 쇼트 사이에 공간적 동일성이 유지된다고 관객은 믿었다. 이러한 쇼트들의 연결을 쿨레쇼프 효과(Kuleshov effect)라 일컫는데, 이러한 실험결과를 토대로 ‘몽타주’이론은 영화학에서 더욱 중요한 가치를 띄기 시작한다.17)

러시아 영화학자이자 영화감독인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또한 몽타주를 옹호한다. 그는 “쇼트는 단순한 자극에 지나지 않으며, 의미를 창출하는 것은 바로 쇼트의 특별한 상호작용(길이, 리듬, 음조, 배음이나 비유의 단계에서)이다. 에이젠슈타인에게 몽타주는 영화의 창조적 원동력이며, 각각의 ‘세포’가 생동하는 영화 전체가 되는 수단이다. 몽타주는 날것의(raw)의 쇼트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생명의 원칙이다.”18) 그가 쿨레쇼프와 푸도푸킨과 다른 점은, 단지 “영화 용어상으로 쇼트 A와 쇼트 B 사이의 갈등은 AB(쿨레쇼프와 푸도프킨)가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운 인자 C(에이젠슈타인)”19)이라고 말한다. 푸도프킨이 영화 쇼트의 연결이 부드럽고 미세한 연결이라고 주장한 반면, 에이젠슈타인은 그것은 날카롭고 충격적으로, 때로는 폭력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라 말한다.20) 루이스 자네티는 이러한 에이젠슈타인‘만’의 몽타주를 ‘은유적 비유의 편집’ 또는 ‘충돌 몽타주 이론’라고 명명한다. “에이젠슈타인은 영화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상징적figurative 비유가 자유로운 문학같이 영화가 유연해지기를 원했다. 그는 영화는 현실적인 상황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주제에 의해서 또는 은유적으로 상호 관련한 이미지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1) 더들리 앤드류 역시 ‘은유적 몽타주’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몽타주’세포’라는 개념은 보다 깊은 은유적 의미를 갖게 되는데, 즉 몽타주 조각은 영화라는 전반적인 기계 속에서 기능함과 동시에 그 자체 속에 발생적인 기호, 즉 테마의 신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세포들이 다성 몽타주 내에서 상호작용하며 ‘앙상블의 일원론monism of ensemble’을 창출할 것이라는 점을 보장한다.”22) 이처럼 “그는 내면적 언어의 흐름이 몽타주에 의해 활성화되기를 원했으며 또한 시각적 병치를 통해 ‘감성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표출시키기를 원했다.”23)

러시아 영화 형식주의자들의 일관된 주장은 상이한 쇼트와 쇼트의 연결 즉, 몽타주를 통한 ‘의미관계 형성’으로 수렴한다. 몽타주에 의한 의미형성에 대한 해석은 기호학을 영화학에 적용시킨 크리스티앙 메츠(C. Mets)의 이론에서부터 그 이해를 도울 수 있다. 크리스티앙 메츠 또한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몽타주 읽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호론적으로/의미학적으로 몽타주 읽기는 쇼트의 연결관계 이상의 새로운 의미를 관객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메츠는 “영화의 기표들은 그것들의 기의들에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 이미지는 사실적 재현realistic representation이고, 소리는 그것이 지시하는 것의 정확한 재생이다.”24)이라고 말하면서도, 기표들의 연관관계를 통한 의미형성에 무게추를 단다.

“의미작용은 메시지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과정이다. …영화에서 가능한 모든 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의 의미를 알 수 있도록 해주는 부호(code)에 의해 매개된다. …의미작용은 지각 자체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기호 가치들 속에 존재한다. 영화에 있어서 그런 기호 가치들은 우리에게 텍스트에서 부호화된 메시지들로서 다가온다. 그것들은 기호학의 첫 번째 범주들이다.”25)

부호란 무엇인가? 메츠는 “부호는 메시지가 이해되도록 해주는 논리적 관계이다.”고 주장하면서, “가속화된 몽타주”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메츠가 즐겨하는, 어떤 특정한 부호의 사례는 “가속화된 몽타주accelerated montage”이다. 이 경우에 어떤 형식이 이미지와 사운드에 새겨진다. (이미지 A와 이미지 B는 점진적으로 보다 짧고 빠른 단편들 안에서 교체된다.) 이 부호는 일반적인 관찰자가 결코 놓치지 않을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미지 A의 기의와 이미지 B의 기의는 분리된 공간에 존재하지만, 시간적으로 연결되고, 공간적으로 또는 극적으로 서로 수렴한다.) 이 메시지는 영화를 통해 전해지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속화된 몽타주는 영화에 특정한sinema-specific 부호code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메츠 또한 영화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기제로서 표현된 부호를 읽는 도구를 제시하고, 그것이 바로 ‘몽타주’라고 이야기한다.

그림 45) 크리스티앙 메츠의 부호와 메시지 관계도

2) (시간적) 몽타주의 의미 형성

바쟁은 몽타주의 기원을 ‘유성영화의 등장’으로부터 살펴본다. 먼저, 그는 “편집은 사건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푸도프킨과 에이젠슈타인은 모두 몽타주가 없다면 영화는 예술이 될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26)며 몽타주의 중요성을 어김없이 언급한다. 그리고 그는 몽타주의 단계를 제시한다. 그 “첫째는 기본적으로 무성 영화와 관계있는데, 이 경우 이미지는 논변이나 드라마 또는 형식과 같은 어떤 추상적 원리에 따라 결합된다.”27)고 말한다. 이는 앞에서 제시한 전통적 몽타주의 전형적 속성이다. 이에 더하여 “몽타주의 두 번째 유형은 영화에 사운드가 도입됨에 따라 훨씬 많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영화의 사건에 물리적으로 있었다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경험했었을 주의의 변화를 묘사하는 단편들로 사건을 세분화하는 심리적 몽타주(psychological montage)이다.”28)라고 제시한다. 몽타주가 이미지적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어도, 그 이외의 질료적 요소들(주로 음향, 대사 등)에 의해서 관객에서 ‘심리적’ 통일감을 부여하면서, 하나의 내러티브를 형성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메츠의 이론에 따르면 부호를 읽는 행위(decode)를 통해 관객은 영화를 이해하고 심리적 통일감을 형성한다. 이는 부호화된 메시지에 접근하고, 영화 본연의 의미에 다가가지 위한 관객의 행위적 동기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해석이 관객의 입장에서의 영화읽기라고 본다면, 그러면 역으로 영화는 결국 몽타주를 통해 부호화되어 발현하는 과정을 내재할 수밖에 없는 매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와 같은 논리를 웹 브라우저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링크’의 네트워크 연결은 앞 페이지와 다음 페이지 사이의 ‘의미적 연관관계’를 형성한다. 웹 브라우저 경험자는 이러한 부호를 읽는 행위(decode)를 수행한다. 그리고 그 결과 ‘심리적 몽타주’가 심연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심리적 몽타주’는 결국 이질적인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의미연관관계의 현현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심리적 몽타주’에서 서로 다른 쇼트들 사이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부여하는 요소는 사운드였다. 이는 웹 브라우저의 ‘정보information’이다. 정보추구자는 단지 웹 페이지를 무작위적으로(random) 탐색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왜 정보추구를 하느냐에 따라 그 양상과 양태는 다르지만, 각각의 정보탐색 행위 자체는 ‘하나의 목적’이 분명 존재한다. 이를 이중식은 ‘정보의 향기’라고 일컫는다.29) 웹 페이지 곳곳에 묻힌 ‘내음’을 좇아서 사용자는 정보의 바다를 서핑한다고 볼 수 있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 부스러기를 쫓아 어디론가 가는 그 모습과도 무척 닮았다.

4. (공간적) 몽타주로서의 정보공간

1) 이미지에서의 (공간적) 몽타주

“몽타주란 합성적으로 구성된 하나의 이미지를 가리키는 기존의 시각언어이다.”30)라는 전제아래, 마노비치는 현대적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몽타주 개념과 비교 대조한다. 이미지 조직을 합성하는 디폴트default 시각 언어로서,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 레이어를 합치면, 다른 레이어에 포함된 요소들이 병치juxtapose되어서, 그 결과가 몽타주처럼 보인다고 그는 언급하며, 그 예로 근대적modernist MTV 스타일 몽타주를 제시한다.31) 그리고 레이어들이 동일공간에서 서로 병치하는 그 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공간적 몽타주spatial montage’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결국 GUI가 제시하는 정보의 병렬적 배치를 다시금 영화 서사적 용어로 풀어서 설명하기 위한 도구적 용어이다.

그에 따르면, GUI와 영화 몽타주는 2가지의 다른 논리를 따른다.32) 영화 몽타주는 동일 허구 세계를 시공간으로 병렬 짓는다. (the jutaposition of times and/or sapces belonging to the same fictional world) 반면, GUI는 서로 연계(connetion)가 없는 다른 윈도우들의 ‘레퍼런츠referents’이다. 예를 들어, 워드 프로세서에서 문서 윈도우를 열는 행동, 엑셀에서 스프레드시트 윈도우를 여는 행위, MP3 플레이어에서 음악 트랙을 보여주는 행동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와 같은 서로 다른 2개의 논리가 기대했던 것 보다 더욱 가깝다고 주장한다. 앨런 카이(Alan Kay)에 따르면, 다중적(multiple) 윈도우는 3-D 대상과 공간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어떠한 데이터도 모두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다중적 윈도우 사용자 또한 이처럼 한 번에 몇 개의 프로젝트도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 기반 하여, 마노비치는 윈도우 계열체paradigm는 결국 시각적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다중적 윈도우 사용의 전통으로부터 파생한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이는 다중적 윈도우가 몽타주와 연관하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공간적 몽타주는 윈도우 인터페이스에서 2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하나의 스크린에 동시에 여러 개의 이미지가 보이는 구조로서의 공간적 몽타주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의 이미지에 여러 개의 이미지가 링크되는 구조로서의 그것이다. 전자에서 시간의 개념은 ‘전후’관계가 사라진, 즉 ‘동시’의 개념으로 수렴한다. 시간적 의미가 소멸되는 대신, ‘공간’의 개념이 부상한다. 그래서 마노비치는 본래 영화 전통에서 사용하던 (시간적) 몽타주와 구분짓기 위해(비교, 대조하기 위해) 이를 ‘공간적 몽타주’라 명명한다.33) 따라서 공간적 몽타주는 이미지들이 ‘공간적’이고 ‘동시적’인 배치라는 성질을 함의할 수밖에 없다.

2) 웹 브라우저에서의 (공간적) 몽타주

필자는 ‘공간적 몽타주’ 개념을 다시금 빌려와 웹이 정보를 재현하는 방식 중 하나로서 이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 첫 째로 인터페이스 양식에 있어서 공간적 몽타주적 성격이다. 실제로 HTML 언어를 사용할 때, 웹 브라우저는 여러개의 중첩적인 table로 구성된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왼쪽 그림은 iGoogle의 첫 화면34)이다. 이를 대표적 웹 에디터인 <나모 2006>에 구현해 봤더니, 편집 창에 가운데 그림이 등장한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수 십개의

그림 46) iGoogle의 첫페이지(왼쪽), 나모편집페이지(가운데), HTML 페이지(오른쪽)

사각형 프레임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HTML에서 사용하는 table 명령어이다. table 명령어는 본 한글 프로그램의 ‘글상자’ 개체와도 같다. 오른쪽 그림은 iGoogle 페이지의 HTML 명령어로 점철된 모습이다. 여기에 table 명령어는 21개가 등장한다. 이는 다시 말해 하나의 윈도우 브라우저 안에 작은 개별적 table 윈도우가 10개 이상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table 명령어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텍스트, 오디오, 이미지, 비디오에 이르기까지 그 콘텐츠 종류에 따른 명령어를 모두 포함시키면, 하나의 웹 페이지 안에는 무수한 윈도우가 병렬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웹에서는 한 페이지에 여러 개의 미디어가 혼종 되어 나타난다. 이는 마노비치가 ‘소프트 시네마’라는 프로젝트로, 영화에서 하나의 스크린에 여러 개의 이미지를 동시에 다중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한 바와 같은 형식을 담보한다. “소프트(웨어) 시네마는 역동적인 컴퓨터 주도 미디어 설치작품이다. 관람자는 일반적 소프트웨어에 의해 쉴새 업이 구축되는 내러티브 영화의 무한한 시리즈로서 발현한다. 저자에 의해 정의된 법칙들의 시스템에 의해, 소프트웨어는 스크린 위 어디에, 그리고 어떠한 순서로 드러낼 것인지를 결정한다. ; 그것은 또한 음악 트랙을 선택한다. 4시간의 비디오와 애니메이션을, 3시간의 보이스 오버 내러이션을, 5시간의 음악으로 존재하는 미디어 데이터베이스에서 선택된 요소들이다.”35)이는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이, 하나의 스크린 내에 여러 개의 윈도우가 동시적으로 병치되어 배열된 결과를 낳는다. 이는 웹 브라우저에서 나타나는 공간적 몽타주의 아주 단순한 상태라는 것을 두 눈으로도 쉽게 비교가능 하다.

그림 47) 소프트시네마 예

그림 48) iGoogle(왼쪽), 네이버(가운데),

로토코(오른쪽) 첫 페이지

(오른쪽 그림 출처 : http://www.lotoco.com)

두 번째로, 웹 인터페이스 역시 다양한 정보가 다양한 담지체에 실려서 다양한 경험으로 표상된다. 다시 말해 웹 브라우저 페이지에서 발현하는 콘텐츠의 성격에 따라 ‘공간적 혼합성’의 성질을 내포한다.

왼쪽은 iGoogle의 첫 페이지이다. 단순한 페이지 양식을 재매개하여 단지 ‘텍스트’만이 자리한다. 반면, 한국 대표 포털 네이버의 첫 페이지는 텍스트를 주로 기반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플래시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동영상 광고, 그에 따른 음향효과 및 영상대사음성이 존재한다. 오른쪽은 대표적인 남성 쇼핑몰 로토코의 홈페이지이다. 홈페이지에 들어서자마자 왼쪽 상단의 미디어플레이어를 통해 최신 DJ 노래가 흘러나오고, 동시에 가운데 플래시 애니메이션은 재생되어 코믹스런 동영상을 제시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 할수록, 텍스트, 오디오, 이미지, 비디오의 멀티미디어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이 또한 콘텐츠 자체의 미디어적 속성에 기인한 ‘공간적 몽타주’라 지칭할 수 있겠다.

그림 49) iGoogle의 아이트랙커 적용의 예

(출처 :http://activerain.com/image_store/uploads/9/8/5/7/0/ar11891149207589.jpg)

이처럼 웹 브라우저 고유의 몽타주로서 ‘공간적 몽타주’는 살아있다. 그리고 ‘공간적 몽타주는’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용자가 경험하는 웹에서의 정보 탐색 내러티브를 구성한다. 최근 아이트랙커(eye tracker)를 활용하여 하나의 웹 브라우져 페이지에서도 정보의 관심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다. 이를 통해, 정보공간에서의 내러티브가 단지, 페이지의 선후관계가 아닌, 하나의 단일 공간 내에서 ‘정보 좇기’에 따라서도 구성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공간적 내러티브’의 존재가능성을 염두 할 수 있겠다.

5. 통합체-계열체로서 시간적-공간적 몽타주

마노비치는 데이터베이스와 내러티브의 관계를 살펴보며, 기호학의 통합체/계열체 이론을 적용하여 설명한다.36) 이는 컴퓨터 문화에서 대립적인 데이터베이스/내러티브 사이의 무게를 어떻게 재분배하는지 보기 위한 작업이었다. 본래 통합체syntagm와 계열체paradigm는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자연언어(예.영어)를 묘사하기 위해 최초로 형식화한 이론이고, 뒤이어 바르트(Roland Barthes)와 다른 이들에 의해 다른 기호 체계(내러티브, 패션, 음식 등)에 적용되면서 확장한 개념이다.

통합체syntagm를 바르트는 “통합체는 (뒷받침으로서 공간을 가지는) 기호들의 조합composition”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자연언어 발화자는 그 요소들을 선형적인 연속체sequence로 서로 엮으면서 발화uttrance한다는 것이다. 계열체paradigm를 소쉬르는 “공통성을 지닌 단위unit는 이론과 연관associated되기 때문에, 그것은 발견 가능한 다양한 관계 내에서 집합group을 형성”한다고 제시하면서 파생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자연언어 각각의 새로운 요소는 일련의 다른 연관 요소들의 집합에서 선택된다는 것이다. 모든 명사들이 하나의 세트를set 형성하는 동시에 특정 단어의 모든 동의어synonyms들(도) 다른 세트 형성한다.

이에 더하여 마노비치는 통합체적 차원의 요소들은 “현존in praesentia” 과 연관하고, 계열체적 차원의 요소들은 “부재in absentia” 와 연관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이미 쓰여진 하나의 문장 자체 는 종이 조각 위에 물질적으로 존재exist하는 단어들로 구성되는데, 이는 현존을 뜻하고 따라서 통합체적 차원이라는 것이다. 반면, 작가와 독자의 마음속에 자리하는 다른 단어들은 실제적으로 부재하면서 계열체적 차원을 형성한다. 따라서, 통합체은 명시적explicit이고 실재적real인 반면, 계열체는 함축적implicit적이고 상상의 것imagned으로 이해된다.

마노비치는 통합체-계열체 방식을 내러티브-데이터베이스에 적용하면서 설명한다. 문학/영화 내러티브도 통합체-계열체 방식으로 작용하는데,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특정단어, 문장, 쇼트, 씬은 물질적 존재이고, 작가의 상상세계와 특정 문화적/영화적 스타일을 형성하는 다른 요소들 그리고 실재 대신에 나타났을 수도 있었던 요소들은 가상적 존재이기에, 실제 내러티브는 통합체로서 명시적이고, 데이터베이스는 계열체로서 함축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가 뉴미디어에서 역전된다.  전통적 통합체-계열체 방식이 거꾸로 해석되는 것이다.

마노비치는 이를 디자인 과정의 예를 통해 제시한다. 물질적 수준level에서 내러티브는 링크들의 집합set으로서 가상적으로 존재하고, 데이터베이스는 요소들 자체가 저장된 공간으로서 물질적으로 존재한다. 다시 말해, 디자인을 할 때 디자이너는 사용이 가능한 요소들의 데이터베이스를 조립assemply한다. 예를 들어, 매크로미디어디렉터에서는 이를 캐스트cast라 칭하고, 어도비프리미어에서는 프로젝트project라 지칭하며, 프로툴스에서는 세션session이라 말한다. 디자인 과정에서 새로운 요소들은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추가되거나, 기존 요소들을 수정modified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반면 내러티브는 특정 순서에 따른 이 데이터베이스 요소들의 링크에 의해 구성된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표를 구성할 수 있겠다.

표 1) 뉴미디어의 통합체-계열체 관계

 여기에 더해, 필자는 통합체를 시간적 몽타주에, 계열체를 공간적 몽타주에 적용해 볼 수 있으리라 본다. 통합체는 결국 데이터들이 선택되어 모인 일련의 나열이다. 시간적 몽타주 역시 시간 순서에 따라 진행된 개개의 페이지의 나열이다. 또한 이는 사용자에 의해 ‘선택’이라는 과정을 선결한다. 그 결과물로서 통합체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공간적 몽타주는 계열체이다. 하나의 웹 브라우저 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선택가능지는 사용자의 정보탐색시 선택 이전의 상태를 묘사한다. 그 모든 선택가능지가 계열체를 형성하면서 하나의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로서 비로서 ‘공간적 몽타주’가 실제로 현현한다.

하지만, 웹 브라우저에서의 통합체-계열체(시간적 몽타주-공간적 몽타주)는 모두 ‘실재’한다. 결코 가상적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뒤에서 제시할 웹 브라우저의 하이퍼매개성과도 맥을 함께하는 지점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혼종적 모습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텍스트는 영화의 메시지들을 통합체the syntagmatic와 계열체 the paradigmatic라는 두 개의 축에 따라 구성한다. 통합체적 축은 텍스트의 사슬에서 차례로 연결된 메시지들의 수평적 흐름이다. 텍스트의 내러티브 도식에 대한 모든 연구들은, 메시지들의 복잡한 구조 내에서 통합체적 의미작용의 특정한 방향을 쫓으려 시도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어떤 것이 어떤 것을 따르는”의미 작용 단계를 추구한다. …동시에 이 텍스트뿐 아니라 모든 텍스트에서, [메시지] 선택에 대한 수직적 차원이 작용한다. 영화는 패러다임들을 끌어들이거나 창조함으로써 의미를 만들어낸다. … 텍스트의 완전한 의미란 선택과 구성이라는 두 개의 축을 복합적으로 섞어 짜는 것이다.”37)

메츠는 기호학을 영화해석에 적용하면서 위와 같은 결론에 다다른다. 이는 통합체-계열체 관계로서의 몽타주가 사용자에게는 결국 ‘하나의 경험’에서 ‘하나의 의미’로 귀결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섞어 짜는 과정이 정보 공간에서의 사용자 정보추구행태이다. 그것은 시작도 끝도 없이 그저 유목자처럼 배회한다. 그 과정 자체에서 사용자는 의미를 취득하고 조합한다. 통합체-계열체는 단지 씨줄-날줄로만 자리매김하지 않는다. 씨줄과 날줄의 부단한 상호작용은 결국 하나의 옷을 짜내듯이, 통합체-계열체의 관계 역시 사용자에게 실질적 ‘의미’로 표면 부상한다.

6. 하이퍼텍스트에서의 몽타주

몽타주를 웹 브라우저에서의 정보경험과 연관 지으면서, 드러나는 사실 하나는 결국 초점은 ‘시간적 몽타주’의 경우 ‘링크들 간의 연결관계’으로 수렴한다는 점이다. 페이지 에서의 ‘링크 연결관계’ 일찍이 하이퍼텍스트 연구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 웹 브라우저 특징 중 하나이다. 따라서, 하이퍼텍스트 이론과 몽타주 이론의 관계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랜도우는 하이퍼텍스트의 연관관계를 콜라주 개념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웹 페이지의 “개별 요소들이 콜라주 형태로 발현하면서”38) 웹 페이지의 본질적 속성이 더욱 잘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미디어 아트 작품을 언급하면서, 콜라주 개념을 보다 쉽게 설명한다. “<인 메모리엄 웹>에서 하이퍼텍스트 테크놀로지-분리된 창들과 병렬된 텍스트를 타일처럼 제시하는 콜라주 효과-는 인쇄계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에 빛을 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한숨”에서 이야기는 매체 그 자체로부터 시작된다.…하지만 그 창은 독자가 그 창에 돌아오기 직전에 읽었던 렉시아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한다는 것을 발견한다.”39)(2.0 p.246)

그러면, 콜라주와 몽타주는 결국 다른 의미를 지시하는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대답은 아니다이다. 콜라주는 단지 전통 회화 예술 영역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시작된 예술 장르라 할 수 있으면, 몽타주는 영화 영역에서 러시아 형식주의자에 의해 발전한 개념이다. 둘은 단지 그것이 언급되고 사용된 분야만 다를 뿐이다. 이질적인 대상들을 혼합한다는 관점은 동일하게 견지한다. 랜도우는 이에 대해 직접 해명하는 듯 하다. “하이퍼텍스트 영화와 마찬가지로 내가 무작위적(randomized), 혹은 다중적 영화(multiple cinema)라고 명명한 디지털 영화 제작의 두 번째 부문 역시 영화를 본질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분리된 장면들로 나누어진 것으로 이해한다.…그것들은 정통 내러티브보다는 모자이크 내러티브를 형성했다. …독자나 시청자들이 다양한 순서에서 만나는 작은 데이터들로부터 일관된 내러티브 형태를 구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40) 여기서 그가 제시하는 ‘디지털 모자이크’는 마노비치가 앞세 말한 ‘공간적 몽타주’와 그 성격적 측면에서 매우 흡사한 동시에, 전통적 영화양식의 ‘시간적 몽타주’와도 일맥상통한다. 몽타주 역시 다음 장면과 그 다음 장면 사이의 관계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한다는 점에서 이는 결국 몽타주와도 관계를 형성한다.

랜도우는 그의 최신 저작 『하이퍼텍스트 3.0 Hypertext 3.0』에서 이에 대한 관점을 더욱 발전시킨다. 그는 데리다의 이론을 토대로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더욱 넓혀간다.

“비연속성에 대한 데리다의 강조에서 거대한 아상블라주assemblage로서의 하이퍼텍스트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다. 나는 다른 곳에서 이를 ‘메타텍스트’라고 명명했으며, 넬슨은 문서우주(docuverse)라고 불렀다. 데리다는 사실 아상블라주란 용어를 인쇄물의 라이벌이요,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영화를 위해 사용했다. 울머는 “그램(gram)이나 흔적은 콜라주/몽타주의 ‘언어학’을 제공한다”(<응용 그래머톨로지>, 267)고 지적한다. 그는 또 데리다가 <말과 현상(speech and phenomenon)>에서 아상블라주란 말을 사용한 것을 인용한다. “아상블라주란 용어는 여기서 제안된 것과 같은 결합(bringing-together)이 짜 맞추기, 엮기, 혹은 거미줄(web)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데 더 적합해 보인다. 이런 구조는 서로 다른 실과 일련의 감각 혹은 힘이 서로 결합할 준비가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분리될 수 있도록 해준다.”41)

영화의 몽타주와 하이퍼텍스트 사이의 유사성에 대한 언급은 아래의 주장에서 더욱 명확해 진다. “영화에서의 장면 전환은 하이퍼텍스트에서 새로운 렉시아에 도달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42) 결국 하이퍼텍스트와 몽타주는 이질적인 것들을 이어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이퍼텍스트의 몽타주 개념은 결국 앞에서 제시한 웹 브라우저에서의 ‘시간적’, ‘공간적’ 몽타주 논지의 가능한 면을 드러내는 다른 논거이다. 웹 브라우저는 본질적 특성 때문에, ‘하이퍼텍스트’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이퍼텍스트적 성질을 그 자체로도 내재하는 ‘시,공간적 몽타주’의 특징에 따라 웹 브라우저에서의 ‘시,공간적 몽타주’ 적용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7. 웹 브라우저의 혼종성(Hybridity)

지금껏 설명한 개념들은 결국 웹 브라우저의 ‘혼종성’으로 모아진다. 웹 브라우저에서 시간적 페이지 경험으로서의 ‘시간적 몽타주’이든, 단일 브라우저에서의 다양한 콘텐츠라는 ‘공간적 몽타주’이든 개개의 의미와 가치는 평등하다. 단지 그 겉모습을 달리하는 미디어의 속성이 혼합Remix(방법)된 형태로 하나의 윈도우 안에 존재할 뿐이다. 웹 브라우저는 결국 혼합remix이라는 방법을 통해 혼종성hybrity이라는 성질을 발현한다.

1) 리믹싱, 전유, 차용

“리믹싱은 오리지널하게 정확하고 좁은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리믹싱의 전례가 일찍이 발견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기준적 관습을 리믹싱하는 멀티트랙 믹서의 시작이었다.  노래의 각각의 요소-보컬, 드럼 등-이 분화된 조작이 가능해지면서, 그것은 음악을 “리-믹스”할 수 있게 되었다. : 몇몇 트랙의 볼륨을 바꾸거나 새로운 트랙으로 대체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점점 이 용어는 확장하고 있으며, 오늘날 이미 존재하는 문화적 작업물들의 어떠한 재작업에도 언급할 수 있게 되었다.”43)

마노비치는 뉴미디어의 ‘리믹싱’ 속성을 언급하면서, 본 용어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유사개념과의 차이점을 밝히는 방식으로 ‘리믹싱’의 본질적 의미에 다가가고자 한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리믹싱은 음악에서 주로 사용했던 개념이다. 노래를 구성하는 다양한 질료들을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혼합, 합성하는 작업이 보다 쉬워짐에 따라, ‘리믹싱’ 영역이 보다 발전할 수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비음악 영역에서 리믹싱과 비슷한 개념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포토그래피 영역에서 주로 언급되는 용어가 바로 ‘전유’이다. 하지만, ‘전유’는 음악영역에서의 ‘리믹싱’과 같이 넓은 영역으로 전파되지는 못했다는 한계를 가진다. 지배적 언어를 살펴보고자 할 때는, 그 용어의 파급정도를 고려하는데, 그런 점에서 ‘전유’는 헤게모니적 가치를 가지기에는 역부족이다.

‘전유’는 또한 ‘리믹싱’과는 그 속성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전유’는 ‘리믹싱’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원본을 재작업하는 과정을 거치는 과정이다. 하지만, ‘전유’는 그것의 본래적 예술 세계 맥락을 새로운 작업에 남기지는 못했다. 다시 말해, 기존의 원본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되는 과정이 ‘전유’이다. 반면, ‘리믹싱’은 그것의 본래적 속성을 새로운 작품에서 그대로 고수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유’보다는 ‘리믹싱’이 보다 혼종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오래된 용어로는 ‘차용quoting’이 있다. 이 또한 “리믹싱”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는데, 만약 리믹싱이 모든 텍스트의 시스템적인 재배열을 뜻한다면, ‘차용’은 과거의 텍스트로부터 어느 정도의 부분을 새로운 텍스트에 단지 삽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마노비치는 ‘차용’을 ‘리믹싱’의 선조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리믹싱’의 큰 특징은 바로 시스템적인 재배열이다. 여기서 시스템적이라는 의미는 다른 부분들과 유기적 연관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로 통용할 수 있겠다.

필자의 관점에서 ‘리믹싱’ ‘전유’ ‘차용’ 모두 ‘혼종성’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다른 관점들이다. 그것들이 지향하는 바는 결국 ‘혼종성’이다. 또한, 윈도우 인터페이스가 시각적 매체라는 관점에서 이는 ‘몽타주’ ‘콜라주’ 개념과 더욱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리믹싱’ ‘차용’은 모두 음악적 사용에서 유래하는 반면, 물론 ‘전유’는 포토그래피 역사에서 파생한다. “그 용어(전유)는 1980년대 오래된 포토그래픽 이미지들을 재작업했던 뉴욕의 포스트 모던 아티스트로부터 최초로 언급되었다. 그들은 세리 레빈(Sherrie Levine) 리차드 프린스(Richard Prince), 바바라 크루거(Babara Kruger) 들이다.”44) 그렇더라도 ‘전유’ 개념 역시 하나의 정지 이미지에 한정될 뿐이기에 한계를 가진다. 웹 브라우저 경험은 하나의 ‘과정’으로서 사용자에게 있어서는 정지 이미지들의 연속체 즉, 동영상적 성격이 보다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는 1초에 24프레임의 정지 이미지의 연속물이다.

2) 혼종성과 하이퍼매개

마노비치는 이미 ‘뉴미디어의 새로운 언어’는 곧 ‘혼종성’이라고 언급했다. 문화적 인터페이스의 다양한 결합과 병치의 결과, 발생하는 성질의 수렴점이 ‘혼종성’이라고 설명한다. 볼터와 그루신 역시 ‘혼종성’을 언급한다.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다중적인 비디오 흐름, 화면 분할, 그래픽과 텍스트의 혼합 등이 보이는데-이러한 미디어들의 혼합은 뉴스를 어떻게든 좀 더 뚜렷이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다.”45) 그리고 이를 하이퍼매개의 발현지점으로 파악한다. “고도로 하이퍼매개된 제작물의 경우도 그 자체만의 고유한 비매개성을 추구한다.”46)

이에 박성수는 “매체는 재현의 투명성, 즉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개입하는 매체의 불투명성이라는 서로 대립하는 축 사이의 긴장으로 구성된다.”47)고 말한다. 그리고 특히 디지털 매체에서 이 긴장이 극대화된다고 말한다. “그 어떤 매체보다도 투명성, 자동성, 비매개성을 강하게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잡종성 즉 다매체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디지털 미디어의 특징이다.”48)

반대로 볼터와 그루신은 미디어가 결국 하이퍼매개에 이르는 즉, 불투명성으로 수렴한다고 말한다. “비록 각각의 미디어가 보다 진정한 비매개적 경험을 제공하면서 선행 미디어들을 개선할 것이라 기약하지만, 이런 개선의 약속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미디어를 하나의 미디어로 인식하게 할 뿐이다. 따라서 비매개는 결국 하이퍼매개에 이르게 된다.”49)고 주장한다. 결국 비매개와 하이퍼매개의 ‘진동’은 ‘하이퍼매개’의 승리로 끝나리라 그들은 예상한다.

필자 역시 이에 동의한다. 특히 정보 공간에서는 비매개보다 하이퍼매개가 훨씬 우세하다. 비매개는 그 지향점이 결국 사용자의 완전한 몰입이다. 매개의 존재 자체를 삭제함으로써 매체를 경험하는 사용자는 현실과 가상 사이의 구분점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정보 공간은 정보를 읽는 행위, 즉 정보 리터러시가 어쩔 수 없이 동반할 수 밖에 없는 장소이다. 정보라는 것은 결국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정보의 정의를 살펴보더라도, 정보는 “차이를 만드는 차이defference makes defference”라 한다.50) ‘정보를 읽는다’는 행위 자체는 ‘차이를 인식하는 과정’이고, 이 과정에는 반드시 인식적 작용이 함께한다. 다름아니라,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비매개보다는 하이퍼매개로서 정보공간은 점철지어지리라 본다. 하이퍼매개는 그 매체적 성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혼종성’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더불어, 볼터와 그루신 역시 웹 브라우져의 인터페이스가 혼종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현행 인터페이스의 경우, 윈도는 화면에 다중적으로 나타난다. 즉 숙련된 이용자라면 한 번에 10개 이상의 윈도들을 겹치거나 중첩해서 열 수 있는데 이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윈도 내의 (텍스트, 그래픽, 비디오) 다중적 표상은 이질적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각각은 보는 이의 주의를 끌기 위해 경쟁하게 된다. 아이콘, 메뉴, 그리고 툴바는 시각적, 언어적 의미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해준다.…데스크톱 인터페이스는 그 자신을 지우지 않는다. 윈도들이 다중적이고 그 내용이 이질적이라는 점은 이용자가 반복적으로 인터페이스와 접촉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용자는 다른 하이퍼텍스트를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터페이스 읽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용자는 윈도들을 조작하고 그 내용을 검토하는 작업을 왔다 갔다 하는데, 이것은 링크의 망인 하이퍼텍스트를 보고 그 링크를 통해 언어로서의 텍스트 단위 보는 작업을 왔다 갔다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51)

8. 맺음말

영화의 기본단위가 ‘사건’이라면, 웹 브라우저의 기본단위는 ‘정보’이다. 영화는 ‘사건’을 보다 실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몽타주’라는 기법을 사용한다. 이는 상이한 쇼트들의 연결을 통해 ‘하나의 의미’를 구현한다. 웹 브라우저는 ‘정보’를 보여 효용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영화의 전통적 ‘몽타주’ 양식을 재매개한다. 이는 맥락이 닿지 않는 웹 페이지들의 연속적 링크관계를 통해 ‘하나의 경험’을 사용자에게 전한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내러티브적 정보공간을 탐험할 수 있다. 이때의 몽타주를 필자는 ‘시간적 몽타주’라 부른다. 영화 양식과 웹 브라우저 양식 사이의 재매개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내러티브와 데이터베이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리라 본다. 이는 결국 인터랙티브 영화를 위한 선결과제이다.

‘시간적 몽타주’와 병행하여 ‘공간적 몽타주’로서의 웹 브라우저도 엄연히 존재한다. 단일한 웹 브라우저 윈도우 내에는 다양한 객체들이 ‘리믹스’되어 스스로를 현현한다. 이 때 ‘공간적 몽타주’는 ‘동시적’이다. 시간적 선후 관계가 아닌 공간적 동일 장소 안에 정보들이 스스로를 드러낸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 웹 브라우저를 혼종적 매체로 이끈다.

혼종성은 ‘리믹스’라는 방법을 통해 도달하는 결과이다. 기존 예술 영역에서 ‘리믹스’와 혼동되어 쓰이는 ‘전유’ ‘차용’ 등의 개념이 있으나, 이들 모두 또한 ‘혼종성’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 차이를 보일 뿐, 결국 종착지는 콘텐츠의 ‘혼종성’이다. 웹 브라우저의 혼종성은 하이퍼매개성으로 이러지는 기제로서 자리매김한다.

정보화는 세상 모든 대상들이 결국 ‘정보’로 귀결된다는 의미를 담는다. 웹 브라우저는 그 자체로 정보 덩어리로서 향후 ‘정보화’ 진전 사회에서 정보 콘텐츠의 성격을 가늠 하는 시금석이다. 정보 콘텐츠는 그 스스로의 미디어적 속성을 드러내는 하이퍼매개성을 담보하는 동시에 혼종적 성격으로서 보다 복합적이고 혼합적인 성질을 갖는다. 이에 대한 연구 이 전 단계로서 본 연구는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혼종성에 대한 선이해를 바탕으로 향후 정보 콘텐츠에 대한 맥락분석에 활용할 수 있으리라 본다.

참고문헌

박성수(2005), 「디지털 영화의 미학」, 문화과학사.

이재현(2004), 「멀티미디어와 디지털 세계」, 커뮤니케이션북스.

D.Andrew(2003),「The Major Film Theories : An Introduction, Dudley Andrew」, 서울대미학과.

D.Bolter, & D,Grusin(1999), 이재현 역(2006), 「재매개 : 뉴미디어의 계보학 remediation : understanding new media」, 커뮤니케이션북스.

D.Bolter, & D,Gromella(2005), 이재준 역(2008),「진동 오실레이션 Windows and mirrors」, 미술문화, 2008.

D.Bordwell, K. & Thomson(1993), 주진숙 역(1997), 「영화 예술 Film Art : An Introduction」, 이론과 실천.

H. Rheingold(1993), 박승관 역(1997), 가상공동체에서 삶의 단편(A Slice of Life in my Virtual Community), 「글로벌 네트워크」

J. P. Landow(1997), 여국현 외 역(2001), 「하이퍼텍스트 2.0 Hypertext 2.0」, 문학과학사,.

J. P. Landow(2006), 김익현 역(2009), 「하이퍼텍스트 3.0 Hypertext 3.0」, 커뮤니케이션북스.

L. Giannetti(1996), 김진해 역(2001), 「영화의 이해 Understanding Movies」, 현암사, 1999.

L. Manovich(2001), 서정신 역(2004), 「뉴미디어의 언어 The Language of new Media」, 생각의 나무.

L. Manovich(2007), What comes after remix? [on-line], http://www.manovich.net/

L. Manovich(2007), The Archeology of windows and Spatial Montage, [on-line],http://www.manovich.net/

http://philokalos-textcube.blogspot.kr/2009/07/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