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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닝 만켈(Henning Mankell)의 생애와 작품

헤닝 만켈

(1948년 2월 3일 스톡홀름 〜 스웨덴)

 

 

  1. 생애

 

 

  헤닝 만켈(Henning Mankell)은 1948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스웨덴 북부의 헤르예달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16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17세에 무대 조연출로 경험을 쌓았다. 1973년 첫 소설『록 블래스터(Rock Blaster)』를 발표한 이후 아프리카를 여행했다. 그는 그곳에서 제2의 고향을 발견한 후 지금까지 스웨덴과 아프리카를 오가며 연출가 및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1986년부터는 모잠비크에서 극단을 운영하며 스스로 표현했듯이 ‘한쪽 발은 모래에, 다른 쪽 발은 눈에’ 묻고 살면서 ‘잊혀진 대륙’ 아프리카의 특수성과 아름다움을 서구에 널리 알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헤닝 만켈은 <발란더 형사> 시리즈로 유명한 스웨덴 출신의 북유럽 스릴러 작가이다. 여기 앉아 저기를 조정할 수 있는 사이버 테러를 소재로 하는 <방화벽>에서 발란더 형사가 단서상 발견하게 된 영화가 <데블스 에드버킷>이다. 요즘 드라마 <유령>에서 악성코드로 원격조정 당하는 자동차까지 보면서 사이버 테러의 무궁무진함을 흠뻑 체험중이다. 그는 이혼 후 떨어져 사는 딸에게 전화로 줄거리를 묻지만 면박만 당한다. 또한 수사의 단서가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직접 보려고 한다.

 

 

  “이것은 도미노와 같은 거야. 돌멩이가 하나 무너지면 이어서 모든 것이 붕괴하는 거지. 이른바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거야. 티네스는 바로 처음 무너진 돌멩이에 해당해.” –(<방화벽> 2권 중에서)

 

“우리는 과거에도 종종 이런 상황을 맞은 적이 있지. 즉 두 사건이 우연히 서로 맞물려 일어나는 경우 말이야. 우리는 우연히 일어난 충돌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그 두 사건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믿는 거지.” –(<방화벽> 2권 중에서)

 

 

  추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쳇바퀴와 충돌과 우연한 연관을 구별짓는 일이다. 시작점을 어디로 하느냐에 의해 수사의 단서와 추리는 일방향으로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이 하던 방식대로 생각하는 경우나 같은 사람이 같은 주제로 줄기차게 써먹는 글의 소재와 문체 같은 것과 비슷하다. 다만 이걸 깨닫는 데는 언제나 시간과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초반에 쉽게 얻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헤닝 만켈이 발란더 형사에게 투여한 발상과 사고의 전환은 초기 수사의 중요성을 꼬집는 것 같다. 그는 몇 가지 사건을 외따로 벌여놓다가 배경을 넓혔다가 좁혔다가 다시 넓힌다. 경계를 오가며 맛보는 짜릿함이 일품인데, 모든 패를 까고 시작하는 이 게임은 정작 끝나고 나서 후련한 게 아니라 허무하다.

 

 

  헤닝 만켈의 배경 무대가 주로 아프리카여서 차가운 느낌이 강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나 <스노우맨> 보다는 내용상으로 사회적 음모 분위기가 물씬나는 <밀레니엄> 시리즈에 가깝다. 북유럽 스릴러의 개요를 정리하자면 요 뇌스뵈(노르웨이), 스티그 라르손(스웨덴), 페터 회(덴마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아이슬란드) 정도이다.

 

 

  헤닝 만켈의 <미소지은 남자>는 장기를 사고팔 목적으로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마저 이용하는 범죄현장을 담아낸다. 1990년대에는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지금은 암묵적으로 있는 일이라는 점만 빼면 충격은 마찬가지다. 산 사람이 살기 위해 산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 악이라면 이 악의 끝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이미 있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일이 두려운 이유다. 과거보다 미래가 겁나는 이유다. 이 소설에 언급되는 작품은 <맥베스>이다.

 

 

  그의 작품 <하얀 암사자>는 이 문장이 배경을 관통한다. “헤닝은 이것이 영국인들의 지배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남아프리카에서 보어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얀 암사자> 중에서)

 

 

  이야기는 약 80년 전 ‘형제단’이라는 조직의 결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헤닝 만켈은 친구들과 함께 보어인의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해 ‘형제단’을 조직한다. 그는 50주년 되던 1968년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단체가 된다. 1970년대 후반 급속히 위축됐는데 이는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이 유색인종과 흑인의 반발과 백인의 동조로 인한 대결 상황에 임박해 있기 때문이다. 30년간 정치범으로 수감되어 있던 넬슨 만델라의 석방이 보어인인 클레르크 대통령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은 보어인들에게 큰 배신으로 여겨진다.

 

 

  과격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클레르크 대통령 암살작전은 천천히 아주 은밀하게 진행된다. 만델라가 클레르크와 함께 1993년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것 외에 아는 게 없다. 클레르크(1989년부터 1994년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10대 대통령이었다)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철폐시킨 공로자로서 그 정책 아래 존재한 가장 마지막 대통령이었다. 작품 속 간간이 등장하는 아프리카민족회의와 KGB는 상상을 벗어난다.

 

 

  # 죽은 뱀 한 마리. 뱀의 머리는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뱀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바로 이러한 형국이었다. 죽어서 이제는 무덤에 묻혀 있다고 생각되는 많은 옛것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 있는 것과 연합하거나 대항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끈질기게 살아 있는 과거에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 –(<하얀 암사자> 중에서)

 

 

  배경에 도움이 되는 만델라의 여러 버전이 있다. 물론 만델라를 몰라도 헤닝 만켈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사적 배경이 호기심을 끌 정도로 대단한 먹이사슬로 이뤄진 인종다툼이라 관심분야와도 맞다. 스웨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먼나라 남아프리카까지 뻗어 있는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과 남아메리카를 이으려는 광대한 스케일에서 개연성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꼭 스웨덴이거나 꼭 남아공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아프리카의 독립과 백인, 유색인종, 흑인 간, 다민족간, 다종족간, 다부족간, 식민종속관계이자 먹이사슬 관계의 검은 대륙의 싸움이 고스란히 배경이 된다. 보어인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은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해 백인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그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계속적으로 편리하게 시행하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지리한 싸움을 끝맺지 못한다.

 

 

  첫 스웨덴 여성의 살인은 그저 우연이었다. 만델라 암살의 킬러로 투입된 이들의 마음이 어긋나 벌어진 우연한 사건의 실마리가 마침내 풀렸을 때, 이 일이 단순한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아프리카 지도자 한 명을 죽이고 정치적으로 원하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한 특정집단(여기서는 보어인)이 오랜시간 계획적으로 주도해온 사건이란 걸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헤닝 만켈은 모든 것을 까발린 채 시작하는데도 일단 재미있다. 발란더 형사의 개인사와 경찰서 동료들과의 인간적 관계. 단순과 우연과 거대한 사건사고가 얽혀 하나의 뿌리 깊은 사건의 전말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대단하다.

 

 

  <다섯 번째 여자>는 우연한 관광객에 불과했지만 수녀 넷이 단체로 죽는 사건에 끼여 죽은 한 중년 여자를 일컫는다. 이름하여 다섯 번째 여자로 통하게 될 그녀의 죽음을 이상하게 여긴 사람은 그녀의 딸이다. 그리고 다른 사건. 자동차 판매업으로 큰돈을 번 한 남자의 죽창에 찔린 죽음. 꽃가게 남자의 실종. 단서는 처음 발견된 사체의 주인공 집안 금고에 든 콩고에서의 용병 경험을 기록한 몇 십년 전의 일기장과 고도로 압축된 해골뿐이다. 어떻게 다시 한번 스웨덴에서의 죽음과 아프리카의 역사를 연결할지 궁금한 가운데, 우리의 발란더 형사는 쉴 틈이 생긴 날 이 영화를 빌려온다. 이번 편에서 그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급사한다.

 

 

  # “1953년부터 시작해 보겠소. 당시에는 네 개의 아프리카 주권국가가 국제연합 회원국이었소. 그러던 것이 7년 후에는 스물여섯 국가로 늘어났고 아프리카 전체 대륙이 들끓었소. 이른바 탈식민지화가 극적인 단계에 접어든 거였소. 독립을 선언하는 국가들이 늘어났고 독립국으로 태어나기까지는 종종 엄청난 진통이 따랐소. 그 중에서는 벨기에-콩고처럼 격심한 진통을 겪은 나라는 없을 거요. 벨기에 정부는 1959년 주권 양도를 위한 계획안을 마련하고, 주권 이양 시기를 1960년 6월 30일로 확정했소. 그런데 그날이 가까워질수록 전국적으로 격심한 소요가 일어났소. 각 부족들이 나름대로의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연일 폭력사태가 발생했소. 어쨌든 독립은 이루어졌고, 카사부부라는 경험 많은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고 루뭄바는 총리가 되었소. 루뭄바라는 이름은 당신도 한번쯤 들어보았을 거요.” –(중략)

 

 

  # “카탕가에서의 전투에는 수백 명의 용병이 참전했소. 용병들의 출신지는 다양했소. 프랑스, 벨기에, 알제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5년이 흘렀으나, 전쟁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독일인들도 많았소. 그들은 아무 죄 없는 아프리카인들에게 복수했소.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용병들도 상당수 있었소. 이들 중 일부는 전사해 무더기로 묻히기도 했죠. 그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는 아무도 모르오. 어느 날 한 아프리카인이 유엔군 스웨덴 진영을 찾아왔소. 그는 죽은 용병들의 서류와 사진들을 가지고 있었죠. 스웨덴 출신 용병들은 거기 없었소.” –(<다섯 번째 여자> 중에서)

 

 

  용병들은 돈을 가장 많이 주는 사람 편에 서서 사람을 죽였다. 명분으로야 자유라는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있었지만 그들의 삶은 결국 피폐해져갔다. 사디스트나 정신이상자로. 그리고 지금은 사진 한 장 속 이름 모를 인물로 나뒹군 채 이름도 소식도 잃은 채 살거나 죽었다. 일기장의 주인은 현재 그 이름이 아닐 수도 있고, 가명일 수도 있고, 원래 그 이름이 아닐 수도 있다. 발란더 형사는 수사가 벽에 부딪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수사의 단서와 증거들 보다 이런 얘기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인생을 통찰하고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촉구하는 사람들의 대화이다.

 

 

  # “할아버지는 자기 세계에 갇혀 살았지. 그림을 그리고, 그림 속에서 해의 움직임을 결정했어. 해는 언제나 있던 자리에 걸려 있었지. 50년 동안 나무 그루터기 위에. 뇌조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나는 가끔 아버지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른다고 생각했어. 자기 둘레에 테레빈으로 된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사셨지.”

 

 

  “그렇지 않아요. 할아버지는 많은 걸 알고 계셨어요.” -(<다섯 번째 여자> 중에서)

 

 

  누구나 누군가에 대해 잘 모른다. 어쩌면 가장 가깝다고 믿는 그 사람에 대한 내밀한 것은 물리적 거리로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자기 세계, 바깥 세계, 그런 게 있다면 내면으로 침잠하는 사람과 바깥 뉴스에 골몰하는 사람의 결혼생활은 위태롭다. 관심분야, 흥미거리, 삶의 방향성이 모두 다를 것이므로 그런 것들이 걱정이 된다. 나는 너와 함께 오랫동안 잘 살아내지 못할까봐. 정작 깊은 곳으로 파고든 작품은 용병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이었다. 가장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부터 촉발된 살인동기 그리고 슬픈 사연과 쳇바퀴 돌듯 연결되는 부조리, 그것이 범죄. 나만 발빠지지 않으려 애쓰고 애쓰는 것만이 과연 최선일까.

 

 

  삶에 최선이 있다고 보기란 힘들지만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어느 사회에서나 문제가 된다. 여자, 아이,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한 배려는 인도적 차원이나 휴머니즘 차원을 넘어선 인간 본연의 윤리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용병의 윤리문제로 가는가 싶던 <다섯 번째 여자>의 살인이 오뉴월에 서리 내리게 하는 여자의 ‘한’ 때문이란 걸 알았을 때-특히 남편의 폭력에 의한-나는 좀 놀랐다. 용병에서 남편에게 매맞는 여자까지는 넓어도 너무 넓은 물리적 거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여름의 축제로부터 시작되는 소문 없는 두려움, 발란더의 동료가 살해된다. 발란더에게는 단지 동료였는데 그는 여러 사람에게 발란더를 가장 친한 친구로 소개하고 다녔다. 그의 외로움과 고독, 관심사와 삶을 파고들면 들수록 한 사람이 남기고 간 생의 자취는 점점 더 희미해진다. 엉망으로 어질러진 사건현장에도 불구하고 찾아낸 비밀공간 서랍에서 두 장의 사진을 발견하면서 불이 켜지는 듯하지만 여전히 수사는 혼돈이다. <한여름의 살인>은 끈적하다. 유럽여행을 떠난 줄로 알았던 세 아이들의 실종. 이들이 평소 벌였다던 역사속 시대 흉내내기. 가장무도회 축제. 여행간 딸의 엽서 속 서명을 딸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엄마. 동료의 살해. 단서가 네 아이들이 평소 놀이처럼 게임처럼 했다던 그 변장쇼에 있을까. 늘 그랬듯 수사는 좀처럼 진척되지 않는다.

 

 

  헤닝 만켈의 책은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부 이상이 팔리고, 4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다섯 번째 여자』『불의 비밀』『별을 향해 가는 개』『방화벽』『하얀 암사자』『미소 지은 남자』 등이 있다.

 

 

 

 

 

 

 

 

  2. 작품세계

 

 

《세상 끝으로의 여행》

 

 

 <세상 끝으로의 영행> 무대는 스웨덴 북부의 작은 마을이다. 수도 스톡홀름까지 기차로도 하루를 꼬박 가야하는 삼림지역이다. 그곳에 아빠와 함께 사는 열다섯 살 소년 요엘 구스타프손이 있다. 나이가 먹을수록 요엘에게는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요엘은 다음 달이면 열다섯 번째 생일이 돌아오는데, 난생 처음 누리게 될 자유에 대한 기대를 감출 수가 없다. 열다섯 살이 되면 모터 달린 자전거를 탈 수 있고 영화관에 당당하게 들어가서 성인 영화를 볼 수도 있다. 어쩌면 아빠 사무엘이 드디어 이 촌 구석의 작은 마을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될는지 모른다. 그러면 요엘은 아빠와 나란히 선원이 되리라. 그러나 아빠 사무엘이 예기치 않은 편지를 받은 어느 날 이후, 요엘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접어든다. 그런데 이 새로운 삶은 요엘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쪽이다. 이제 요엘은 아빠와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였던 과거의 사람과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지 아닌지 결정해야 한다.

 

 

 

 

 

 

  작품분석

 

 

  겨울이 너무 춥고 밤은 길기만 한, 게다가 어둠이 너무나 짙고 숲도 한없이 깊은 스웨덴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는 열다섯 소년 요엘과 그의 아버지 사무엘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설이다. 거기에 15년 동안 요엘의 기억 어느 한 구석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엄마 예니가 그들의 삶에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게 전개된다.

 

 

  요엘의 아버지 사무엘은 세계 곳곳을 항해하는 큰 배의 선원이었으나 지금은 스웨덴 북부의 작은 마을에 ‘처박혀’ 사는 벌목공이다. 그는 언젠가는 다시 바다로 돌아갈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아들 요엘에게 말한다. 하지만 요엘이 보기에 아버지 사무엘에게는 전혀 그럴 뜻이 없어 보인다. 사무엘은 바다만큼이나 끝도 없이 넓고 깊은 숲에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다닌다. 그는 또한 뺨의 수염은 아무렇게나 깎은 채로 피로한 눈망울에 바다를 향한 갈망만을 담고 산다. 그런 아버지에게 요엘은 틈만 나면 언제 이 답답한 마을을 벗어나 넓은 바다로 나갈 거냐고 묻는다. 아빠 사무엘과 함께 선원이 되어 큰 배를 타고 저 멀리 세상 끝까지 가 보는 것이 요엘의 희망이자 꿈이기 때문이다.

 

 

  요엘의 열다섯 살 생일을 앞둔 어느 날. 아빠 사무엘은 엄마 예니의 소식을 전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요엘의 기억이 미치는 한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엄마 예니. 요엘로 하여금 집안 살림은 물론 아빠 사무엘의 엄마 노릇까지 하며 살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제 요엘은 아빠와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였던 과거의 사람과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지 아닌지 결정해야 한다. 오랜 세월 두 부자의 삶에서 사라져 버렸던 그 사람을 만난다면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다시 겉으로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요엘과 아빠는 약속된 미래를 맞이하려면 과거를 매듭짓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다. 그래서 부자는 엄마 예니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살고 있다는 스톡홀름으로 떠난다.

 

 

  헤닝 만켈의 작품에서는 아프리카가 배경적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작가가 스웨덴과 아프리카를 오가며 ‘한쪽 발은 모래에, 다른 쪽 발은 눈에’ 묻고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아프리카는 특히 주인공의 ‘꿈’을 대변한다. 늘 다다르고 싶고, 꿈을 꾸게 만들고, 희망을 품게 하는 곳. 이제까지의 삶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는 그 세상. 자신의 집을 배라고 생각하고 늘 바다를 향한 갈망을 마음에 담고 살았던 아빠 사무엘이 몸을 싣고 떠난 세상의 끝. 그 세상을 향해 이제 홀로 길을 떠나게 될 요엘의 사랑, 상실, 그리움, 꿈이 이 책의 주제이다.

 

 

  스톡홀름에서 엄마 예니를 만나고, 아버지 사무엘을 홀로 떠나보낸 요엘은 이제 세상을 향한 여행을 시작한다. 한 소년이 홀로 길을 나선 것이다. 그 세상에서 소년은 사랑과 이별을 배우고 배의 좌표를 확인 하 듯 인생의 방향을 가늠한다. 언제나 돌아 볼 기억들을 간직한 채 말이다.

 

 

  이 책《세상 끝으로의 여행》은 작가 헤닝 만켈이 ‘요엘 시리즈’로 발표한 4권 중 마지막 책이다. 첫 책은『별에게로 가는 다리』이고『황혼 속의 그림자』『눈이 내리면』그리고 『세상 끝으로의 여행』으로 이어지는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스토리와 상관없이 모두가 요엘이 주인공인 소설들이다. 헤닝 만켈은 어떤 장르를 택하건 스릴 넘치면서도 교훈적인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의 소유자다. 그의 문장은 간결하고 검소하다. 특유의 툭툭 던지는 듯한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멋스러우면서 쓰임새까지 분명한 북유럽의 디자인과 흡사한 느낌이다. 장문의 설명이나 화려한 수식이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건드릴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나는 예술을 사용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물방울들이 떨어져 돌을 마모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나는 그 물방울들의 한 부분이 되려고 노력해요.” 라는 작가의 인터뷰 내용답게 헤닝 만켈의 주인공들은 모두 가슴 속 깊이 상실과 아픔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물방울들이 떨어져 돌을 마모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다. 단단한 내면이 뿜어내는 갈망은 그만큼 강하다. 이제 자신만의 길을 향해 떠나는 열다섯 살 소년 요엘에게 마음 속 깊이 사랑과 격려를 보내고 싶다.

 

 

 

 

 

 

  본문 중에서

 

 

  요엘은 그 밤을 자신이 온전하게 성장한 순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었다. 살며시 호텔 방문을 열었을 때 그것은 마치 자신의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여는 것 같았다. 그 호텔 복도에서 요엘은 어린 시절을 영원히 떠났다. — p.127

 

 

  “너무 추웠어.” 그녀가 말했다. “겨울이 너무 추웠고 밤은 몹시 길었어. 게다가 어둠이 너무나 짙었고 숲도 한없이 깊었지. 얼음도 너무 많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너무 많았고. 난 미쳐버릴 것만 같았어. 결국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어졌어. 그냥 여행가방을 싸가지고 떠나고 말았지.” — p.156

 

 

  예니 라이덴께, 제가 우리 아버지 사무엘 구스타프손처럼 상스럽지 않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절대로 고함을 지르지 않아요. 저도 당신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요엘 구스타프손 올림 — p.185

 

언제나 이 집에서 살아왔다. 그 옛날에는 엄마 예니도 여기서 살았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에 그녀는 여행 가방에 짐을 꾸려가지고 떠나 버렸다. 그때 요엘은 너무 어렸기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살아오는 내내 요엘의 곁을 지켜준 사람은 단 한 사람, 아빠 사무엘뿐이었다. 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뺨의 수염은 아무렇게나 깎은 채로 피로한 눈망울에 바다를 향한 갈망을 담고 살았던 사무엘뿐이었다. — p.282

 

 

 

 

 

 

 

 

 《이탈리아 구두》

 

 

『이탈리아 구두』는 대부분의 전작들의 배경이었던 아프리카를 벗어나 스웨덴의 다도해를 배경으로 쓴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순하고 명확한 언어를 통해 죽음과 고통뿐만 아니라 행복과 ‘삶의 즐거움’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주인공은 죽음을 앞둔 옛 연인과의 재회를 시작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기록을 남기던 일상을 떠나 죄책감과 용서, 나이듦과 외로움,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당신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동안 내내 이곳으로 오는 중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숲의 오솔길이나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기 안에서도 길을 잃기 쉬운 법이라오.”

 

 

  스웨덴과 아프리카의 모잠비크를 오가며 작가 및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스웨덴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헤닝 만켈이 오랜만에 아프리카를 벗어나 스웨덴의 다도해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인정받는 외과의사였던 프레드리크 벨린은 12년 전의 실수로 인해 스웨덴 다도해지역에 있는 한 섬에 스스로를 가두고 지극히 단조로운 삶을 살아간다. 어느 겨울날 아침 프레드리크는 두꺼운 얼음 위에서 그를 향해 힘겹게 다가오는 사람을 발견한다. 40년 전의 과거가 프레드리크의 삶을 뒤흔드는 순간이다. 얼음위로 다가오는 사람은 그가 사랑했으나 배신했던 여자 하리에트이다. 그녀는 프레드리크가 오래 전에 했던 약속을 지켜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 온 것이다. 40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지못해 떠난 여행에서 프레드리크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그의 배신 때문에 뒤에 남겨졌던 하리에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프레드리크는 하리에트가 더 큰 비밀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발란더 시리즈로 대표되는, 특유의 단문과 긴박감 넘치는 구성으로 전 세계에 수많은 추리소설 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헤닝 만켈의 전작들과는 달리, 외로움과 쓸쓸함이 진하게 배어나오는 소설이다. 그러나 추리소설의 대가답게 시종일관 독자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장기는 여전하다.

 

 

  스웨덴 다도해 지역의 섬에 홀로 사는 괴팍한 주인공 프레드리크를 통해, 만켈은 아주 섬세하고 예리하게 늙음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얘기한다. 책을 읽고 나면 얼음만큼이나 두꺼운 외로움에 감정이입이 되어버릴 만큼,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 특히 이들이 외로움과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감성적이고 능숙하게 묘사하고 있다.

 

 

  외과의사였던 주인공 프레드리크 벨린은 12년 전의 어두운 비밀, 끔찍한 실수로 인해 스스로를 섬에 가두고 지극히 단조로운 삶을 살아간다. 찾아오는 사람은 집배원뿐이다.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행위는 매일 아침 얼음을 깨고 그 구멍으로 들어가 얼음물 속에서 수영하는 것이다. 12년에 걸친 이런 생활은 40년 전의 연인이 갑자기 찾아와, 옛날에 했던 약속을 지키라고 부탁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내가 이유도 없이 사라진 지 정확하게 37년 만이다. 내가 예순여섯이니 그녀는 예순아홉, 이제 곧 칠순일 터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문을 닫고 싶었다. 다시 계단으로 나오면 그녀가 사라졌기를 바랐다. 그녀가 저편 얼음장 위에 절대 없었던 것처럼’ — 34p

 

 

  언젠가 함께 가기로 했던 숲 속 연못을 찾아 가는 여정에서 프레드리크는 소외된 사람들을 만난다. ‘자기 시대의 발판은 상실하고 새로운 것들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타의로 그룹 홈에서 살아야 하는 소녀들.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한쪽 팔을 잃은 앙네스. 소란이 싫어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사람들. 그들을 보며 프레드리크는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깊은 숲속이나 섬처럼 외딴 곳에 격리’시키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얼음과 폭풍과 비에 시달리는 외로운 섬에서 도망칠 수 없는 과거 때문에 마음에 얼음만큼이나 두껍고 차가운 벽을 치고 살았던 세월. 죽음을 앞둔 옛 연인과의 재회를 시작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프레드리크는 외로움과 죽음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정말 ‘죽음이 삶의 은신처는 하나도 남기지 않는 초토화’인지, 구체적인 육체의 통증 앞에서 추상적인 두려움은 사라지는지 알 수 없지만, 프레드리크는 ‘내가 왜 살다 가는지 죽기 전에 알아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직 그럴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쩌면 당신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동안 내내 이곳으로 오는 중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숲의 오솔길이나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기 안에서도 길을 잃기 쉬운 법이라오.” — 167p

 

 

  40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지못해 떠난 여행은, 결과적으로 주인공을 삶으로 돌아오게 하는 출구였다. 주인공이 온갖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죽은 옛 연인이 남긴 글이 옳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90세가 넘은 이탈리아 구두공, 그리고 섬에 사는 십여 년 동안 프레드리크가 유일하게 교류했던 집배원을 포함한 모든 주인공은 아주 독특하고 비사교적인 사람들이다. 특히 온갖 단점과 괴팍함을 지닌 등장인물들의 특성과 세밀한 분위기의 응축은 이 소설의 장점이다. 만켈은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바다 속 심연만큼이나 깊은 외로움에 빨려 들어갈 정도로, 얼음의 두께와 기온과 바람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 중 하나인 모잠비크와 스웨덴을 오가며, 작가 스스로의 표현대로 “한쪽 발은 모래에, 다른 쪽 발은 눈에” 묻고 살면서, ‘잊힌 대륙’ 아프리카의 특수성과 아름다움에 서구 여론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집중시키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헤닝 만켈. 그가 전작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언어로 빚어낸 <이탈리아 구두>는, 얼어붙은 만(灣)의 얼음을 치는 것 같은 단순하고 명확한 언어를 통해 죽음과 고통뿐만 아니라 행복과 ‘삶의 즐거움’을 깊이 있게 아우르는 소설이다.

 

 

 

 

 

 

 

 

 《얼굴 없는 살인자》

 

 

  한 부부가 잔혹하게 살해된다. 범인의 흔적은 물론 범행 동기도 오리무중이다. 목격자도 없다. 단서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지만 경찰 수사관 쿠르트 발란더는 무언가 있다는 직감의 끈을 놓지 않는다.

 

 

  최근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발란더를 주인공으로 한 첫 번째 소설인『얼굴 없는 살인자』에서 우리는 스웨덴 남부의 작은 마을의 정경 이면으로 초대된다. 수사 결과 이 마을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이상적인 전원마을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분노에 차 살인자를 추적해 나가던 발란더는 오래지 않아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의 궤도 위를 더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1991년에 출간된『얼굴 없는 살인자』는 경제 위기와 높은 실업률, 정치적 포퓰리즘, 그리고 비록 단기간이기는 했지만 외국인 혐오의 기치를 내건 극우정당의 의회 입성 등 당시 스웨덴 사회가 직면한 이슈들을 반영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암적 요소는 비바람 치는 음침한 시골 마을과 맥 빠진 경찰. 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소극적인 주민들을 통해 나타난다. 불신은 비단 살인사건 수사 과정에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 보편적인 현상이고 갈수록 양극화 되어가는 여론이 환경을 형성한다. 그리고 발란더는 그 안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만 한다.『얼굴 없는 살인자』는 특별히 정치적 성격이 짙은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날로 더해가는 사회적 편협에 단호히 맞섬으로써 매력적인 플롯에 도덕적 요소까지 가미하게 되었다.

 

 

 『얼굴 없는 살인자』는 9권의 발란더 소설 중 첫 번째 책으로 만켈의 국제무대 데뷔작이기도 하다. 그 나름의 가치만으로도 절대로 읽고 후회하지 않을 소설이지만, 한편으로는 만켈과 그 뒤를 바짝 따르는 노르웨이 작가 카린 포숨이 이끄는 20세기 말 스칸디나비아의 현대적 추리물의 등장이라는 점에서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본문 중에서

 

 

  그는 그 장소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핸드백과 옷을 뒤졌다. 그리고 원하던 것을 발견했다. 세 사람 다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는 그 여권들을 점퍼에 넣었다. 그 날이 지나기 전에 모두 태워버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주머니에서 작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꼭 한 장을. 마치 18세기의 피크닉 장면을 멋진 명화로 감상하는 듯했다. 단, 누군가가 그 그림 위에 붉은 피를 흩뿌렸다. — p.16

 

 

  “열네 살짜리 소년 둘이 다른 한 소년을 쓰러질 때까지 구타했지. 쓰러진 소년은 열두 살밖에 안 됐었지. 별 이유도 없었어. 아이가 쓰러져 의식을 잃자 그들은 가슴팍을 마구 밟았지. 그애는 의식을 잃은 게 아니라 죽었어. 그 사건으로 우리는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어. 물론 구타행위는 어느 시절에나 있었어. 하지만 예전에는 한쪽이 지거나 쓰러지면 멈췄어.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말이야. 페어플레이라고 할 수 있어. 또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졌고.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요즘 청소년들은 그게 뭔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 나는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가 부모에게서 방치되어 있다고 생각해. 아니면 아이들은 우리가 옳지 않다고 외면하던 걸 오히려 자신들의 행동 규칙으로 삼았는지도 몰라. 경찰의 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사고의 전환이 필요해졌어. 기본적인 뿌리가 완전히 변한 거야. 그 동안 축적해 왔던 경험들이 이젠 가치 없는 게 되고 말았어.” — pp.65~66

 

 

 

 

 

 

 

 

《미소지은 남자》

 

 

  『미소지은 남자』는 꽤 이국적인 작품이다. 작가 헤닝 만켈은 스웨덴 출신으로 현재는 모잠비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98년 독일어로 번역, 출간됐으며 독일 추리문학상과 서적상들이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추리소설의 원류를 움켜쥐고 있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이상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일본. 그 외의 추리소설을 서점에서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굳이 찾는다면 러시아의 초 인기 작가 ‘마리니나’의 작품 정도일까?

 

 

  <미소지은 남자>는 비록 독일어 텍스트를 기반으로 독일 권에서 인기를 얻은 작품이지만 작품의 배경은 스웨덴이다. 엄밀히 말하면『미소지은 남자』는 북유럽의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다. 덴마크의 작가 ‘페터 회’의『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후 북유럽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은 실로 오랜만이다. 10,000원의 가격이 어울릴만한 꽤 두꺼운 책이지만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한 사람을 쏘아 죽인 죄책감에 페인처럼 지내는 발란더는 막 경찰복을 벗기 직전이다. 친구에게 그의 아버지의 죽음을 조사해달라는 부탁을 받지만 괴로움에 젖어있는 그는 한 마디로 거절한다. 하지만 친구마저 살해당하고 비로소 그는 수사에 복귀한다. 두 사람의 죽음에 그림자처럼 어려 있는 이는 파른홀름 성의 성주 하더베리. 스웨덴의 거물 사업가이자 고결한 정신으로 여겨지는 그에게 수사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사건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커져간다.

 

 

 『미소지은 남자』는 시리즈 물로 이 작품은 헤닝 만켈의 ‘발란더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다.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시리즈’나 패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 얼 스탠리 가드너의 ‘페리 메이슨 시리즈’ 등이 그러하듯 대부분의 시리즈 물은 그 작품의 질이 주인공의 매력에 크게 좌우된다.

 

 

  주인공 ‘쿠르트 발란더’는 쉰을 바라보는 노 수사관. 범죄와 싸워온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유능하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독자들이 바라는 멋지고 쿨한 경찰은 아니다. 범죄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반짝이지만 육체적인 능력은 거의 한계에 달했다고 할까? 하지만 발란더가 보여주는 매력인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수사를 지휘하는 발란더는 어울리지 않게 격렬하게 몸을 내던지기도 하고 수사 전체를 지휘하며, 동료들의 장점을 확실하게 이끌어낸다.

 

 

 『미소지은 남자』는 결코 고전 추리소설이 아니다. 고전과 현대의 추리소설을 구분 짓는 가장 확실한 경계점은 사건의 성격이다.『미소지은 남자』속의 사건은 괴이하거나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사건이 아닌 현대의 범죄이다. 작품의 기저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자신이 잃어버린 발란더가 수사를 통해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또 하나는 막연히 살기 좋은 나라로 여겨지는 스웨덴의 추악함에 대한 고발이다. 작가는 이 두 흐름을 축으로 세워놓고 스웨덴 경찰의 수사관행, 수사법, 공무원들의 그릇된 관행, 금융사기 등, 대단히 세밀한 묘사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작품의 호흡은 대단히 길어서 행간 읽기를 유도하는 작가의 배려가 엿보인다. 비록 추리소설이 주는 스피드는 느낄 수 없지만 수사 지식이나 각 부서의 협조 같은 현 범죄 수사의 체계를 접하는 잔재미를 느낄 수 있다. 독자는 이 작품을 통해 단순한 사건의 해결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현대추리소설의 미덕을 되새김할 수 있다. 발란더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인『다섯 번째 여자』는 이 작품보다 먼저 같은 출판사인 ‘좋은 책 만들기’에서 작년에 출시된 바 있다.

 

 

 

 

 

 

 

 

 

  3. 헤닝 만켈에 대한 평가

 

 

  헤닝 만켈은 1948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스웨덴 북부에서 자랐다. 1973년『록 블래스터(Rock Blaster)』로 데뷔한 이래 미스터리 시리즈와 청소년을 위한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는 스웨덴 최고의 작가이다. 아우구스트 스트린베리 상, 닐스 홀게손 상, 가톨릭 아동 및 청소년 문학상들을 수상했다.

 

 

  『별을 향해 가는 개』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재를 경험한 작가 자신의 내면을 담은 자전적 소설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 중 하나인 모잠비크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http://m.cafe.daum.net/choiin2000/JtsX/269?q=D_lZmDgpvDsMg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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