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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추리소설과 리얼리즘의 이해

현대 추리소설의 방향

오우치 시게오 (大內茂男)

오늘날의 독자가 추리소설에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수수께끼 풀이의 추리적 흥미만이 아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현실이나 거기에 가하는 비판이다. 사회 전반이 무사 평온하던 옛날이라면 불가능 취미, 뜻밖의 트릭, 스릴과 서스펜스만으로 충분했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 독자라면 변함 없이 초인적인 탐정의 활약에 박수를 보내고 동경하며 동일시 대상이 되는 작품도 있겠지만, 그러한 작품은 어른을 상대로 할 수는 없다. 오늘의 성인 독자는 추리소설에서도 엄격한 현실 비판과 인생관, 세계관을 요구하고 있다. 나 자신은 어느 쪽인가 하면 구시대적 미스터리 팬으로, 추리소설에는 굳이 수수께끼 풀기 이상의 것은 요구하지 않고 인간적, 사회적 흥미나 예술적 요구는 보통문학에서 채우고 있다, 말하자면 두 개의 칼을 쓰고 있는 것인데, 나와 같은 구식(舊式) 독자는 차츰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새롭게 추리소설 독자층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수수께끼 풀기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다.(중략)
향후는 리얼리즘의 추리소설이 요구될 것이다. 그것은 트릭이 아니라 심리나 성격, 동기나 사회성에서 출발한 추리소설이다. 마쓰모토 세이초 씨가 그 선수를 썼다. 그렇지 못하다면 향후는 독자로부터 환영받기 어렵지 않을까. (중략)
추리소설의 재미가 풍부한 문학성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향후는 읽을 거리로서도 대접받기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동기의 심리」에서)

[출처] 일본 미스테리 추리 소설 관련 자료들.pt.2.|작성자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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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소설과 새로운 문학적 가능성:  지아르디넬리의 『뜨거운 달』,  송 병 선

http://www.latin21.com/board3/view.php?table=criticism_ch&bd_idx=10

1. 추리소설과 라틴아메리카 현대문학

198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전 세계를 강타했던 ‘붐’ 문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보르헤스와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리고 푸엔테스와 바르가스 요사로 대표되는 ‘붐’ 문학이 소설 형식의 혁명을 추구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는 멀어진 것과는 달리, 80년대 이후에 글쓰기를 시작한 ‘포스트 붐’ 작가들은 군사독재로 얼룩진 그들의 현실을 그리면서 기성 권력에 도전하는 현실 비판의 문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19세기 리얼리즘 형식을 따라 철학적이고 근엄한 어조의 ‘팜플렛 문학’으로 현실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추리 소설 특히 미국에서 발전된 하드보일드 소설의 모델을 변형시키면서 자국의 현실을 비판적 관점으로 되돌아본다.

물론 라틴아메리카 현대 문학사를 살펴볼 때 이런 젊은 작가들이 처음으로 추리 소설의 기법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다. 보르헤스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이나 「죽음과 나침반」 혹은 「배신자와 영웅의 논고」와 같은 작품들은 추리 소설의 기법을 사용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보르헤스를 위시한 60년대와 70년대의 ‘붐’ 작가들의 추리소설은 현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면서 현실에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유럽 문학의 모델을 사용했던 것이지,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포스트 붐’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작가들에 의해 새로운 성격을 획득하게 된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저급한 문학으로 취급되었던 추리소설(특히 하드보일드 소설)과 그것에서 파생된 서스펜스 소설 속에서 자신들의 암울한 현실을 그릴 수 있는 도구를 발견했던 것이다. 특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작가들은 70년대와 80년대에 군사독재의 억압을 받는다. 그들은 군사 독재를 피해 망명을 해서 글을 써야만 했다. 그들은 작품을 통해 권력의 전횡을 묘사하면서, 자기 조국의 제도화된 폭력의 문제를 살피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추리소설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오스발도 소리아노(Osvaldo Soriano), 세르히오 시나이(Sergio Sinay), 리카르도 피글리아(Ricardo Piglia), 마누엘 푸익(Manuel Puig), 루이사 발렌수엘라(Luisa Valenzuela), 앙헬리카 고로디셔(Angélica Gorodischer), 멤포 지아르디넬리(Mempo Giardinelli), 로베르토 볼라뇨(Roberto Bolaño)와 같은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이 이런 장르를 선호하면서 발전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소설의 축이 범죄와 권력 남용, 폭력과 죽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5. 하드 보일드 소설의 가능성

거짓 흔적의 게임을 통해 마침내는 누가 범죄를 저지른 범인임을 밝히는 애거서 크리스티 류의 소설과는 달리, 멤포 지아르디넬리의 『뜨거운 달』은 독자에게 진실을 은폐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를 아라셀리의 강간과 그녀의 아버지의 살해를 목격하게 하면서, 작가는 “공범 독자”라는 문학 개념을 한계 상황으로 이끈다. 이런 현상은 지아르디넬리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의 ‘포스트붐’ 소설은 결정적인 해답 대신에 독자에게 그런 해답을 상상하게 만든다.

의심할 여지없이 『뜨거운 달』은 고전적 의미의 추리 소설이 아니다. 이 소설의 의미는 새로운 문학 의식과 전통적 모델의 병치를 통해 팔림세스트를 형성하면서 이루어진다. 즉, 정치를 추리소설의 모델로 흡수하는 패러디적 담론이다. 린다 허천은 패러디란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은 차이를 포함하는 반복이며, 비판적 거리를 수반하는 모방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러니컬한 도치를 통해 원래의 모델이나 작품을 비웃기도 하며 찬양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지아르디넬리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제와 문체를 『뜨거운 달』에 통합시키면서, 이 장르를 찬양한다. 그러나 이 장르의 전통적 법칙을 변형하면서, 작가는 기존 질서를 전복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사회에서의 폭력에 관해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다.

패러디적 글쓰기란 “패러디는 변화를 가능케 한다. 심지어는 급진적 변화를.”이라고 말한 린다 허천의 말대로 급진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해방의 행위이다. 창조적 행위는 해방이며, 이것은 바로 언젠가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민주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추방작가들의 최대의 관심사이다. 이렇듯 그들은 하드보일드 소설의 기존 장르를 뛰어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제 우리는 문학의 서열을 정해 놓은 낡은 관습을 문제시하고,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문학장르가 무엇이며 그것이 저급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되어 오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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