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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제문 사례

한글 제문은 누가 누구에게 썼을까요?  홍윤표의 한글 이야기

2012/05/15 20:00

 

http://blog.naver.com/urimal365/100158125914

 

 

누나가 남동생 제문을 쓰다

 

다음의 ‘한글 제문 1’은 남동생이 죽었을 때 누나가 쓴 것입니다. 우선 사진을 보시지요. 길이가 길어서 셋으로 나누어 보도록 합니다. 이 ‘한글 제문 1’은 세로가 28.0cm, 가로가 115.0cm입니다.

 

 

                                           <한글 제문 1-1>

 

                                           <한글 제문 1-2>

 

                                           <한글 제문 1-3>

 

내용을 대충 훑어 보면서 읽어 보시지요.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문법적인 해석을 가하려는 국어학적 관점에서 읽으시면 그 내용은 간 데 없고 문법만 남을 테니까요. 회색 글씨의 내용은 필자가 주를 붙인 것입니다.

 

유세차 게축癸丑 정월 경오색庚午朔 삼십일 기해己亥 친가親家 영양 천공潁陽千公 소상지일야小祥之一夜라 전일석前日夕무술해戊戌에 불우不遇한  이 누이는 비백지전으로 제곡啼哭, 큰 소리로 우는 것 오곡嗚哭, 슬프게 우는 것 우영연지하왈于靈筵之下曰, 죽은 사람의 신주 아래에서 아뢰기를 오호 통재며 오호 애재라 인후仁厚한 우리 남동생 안부 묻자 부고지訃告紙가 웬일인고 이런 변이 있다 말가 건가近家, 집 근처에 있는 누이는 동생 문병 간간間間이 못 해 보고 유언遺言한 말 못 드러 일천주 유한有限이면 육십칠세 정명正命턴가  그리 바쁘시며 슬프다 창천蒼天, 푸른 하늘아 이 광경이 웬일이인고 창천 창천이 문어지고 백일白日, 해이 무광無光, 빛이 없음이라 이런 변이 있다 말가 오장五臟이 재가 되고 훙장胸臟, 가슴이 막막하네 애통할사 우리 헹제兄弟 대락 정곡 알이오며 차여녀 남편 문씨 가문으로 성혼 데여되어 이남이녀二男二女 사남매四男妹 각각 성혼成婚 식커시켜 다남다녀多男多女 생유生有할 제 친가親家 우리 남동생은 이씨 가문 성혼 데여 사남이녀 육남매을 애지중지 여기시다 육십 연하 못다 보고 옥경玉京, 옥황상제가 사는 곳 성경星京, 옥황상제가 사는 곳 데오시니되오시니 동생 사직 길오 못 면하야 삼일 후 순장旬葬이라 고대광실高臺廣室 떤저던저 두고 말연유택末年幽宅, 무덤 도라들 제 엇지 갈고 엇지 갈고 심심산곡深深山谷드러가면 명산대지名山臺地 자리 자바 평토분행平土墳行 지은 후에 수백 빈객賓客 허터진다흩어진다 우리 여러 족카조카 애통 소리 산천이 용열이고 초목이 함누로다 청산석백이 일부로에 찾는 사람 어너 누며 세우비細雨비 세우비 헌날일 제 어느 칭구친구 차자 오리 청산야월靑山夜月 달 발글 제 두경성杜鵑聲만 처랑토다 오호 애재 우리 동생 구천九泉 행자行者 전송하고 야안에 피눈물를 압치마에 다마 안고 친택親宅으로 도라가니 이 누나는 무용無用이라 슬푸다 우리 동생 일월日月이 불거하야 이 날이 기년朞年 기일忌日 금일이라 일자는 도라왓거만은 동생은 한 변한 번 가면 도라올돌아올 줄 모르는고 지리산 회춘回春커든 춘색春色 따라 오실넌가 오는 날이 어는 땐고 내연내년 헤춘回春 삼월 데면되면 꼿필 때에 춘풍春風 따라 오실랑가오실런가 진양강晉陽江, 진주에 있는 강 달 떠거는뜨거든 월색月色 따라 오실낭가오실런가 오는 날이 어는 땐고 수욕정이풍지하고 자욕야이친부채라樹欲靜而風不止하고 子欲養而親不待라,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어는 때에 다시 볼고 춘원春園에 만발滿發 화초花草 봄소식에 동생 생각 하절夏節 염천炎天, 몹시 더운 날씨 더운 날에 세우비細雨비, 가랑비에 동생 생각 구주九州, 온나라 단풍丹楓 휘날일 때 낙업성落葉聲, 낙엽 떨어지는 소리도 동생 생각 염동설한엄동설한 찬바람에 백설비白雪비에 생각이라 어너 하시何時 다시 볼고 영상靈床에 술을 부어 호늘을 위로慰勞할가 애재라 오늘밤 영자하靈子下, 신주 아래에 우리 여러 족카 애곡성哀哭聲, 슬프게 우는 소리 하그만은크건만은 대답한 말 전헌전연 없네 듣는잇까 보는잇가 한 잔 술을 부어 보아도 구나줄 줄 모르오니 자시는 줄 어이 알고 회포를 다하자면 창해수滄海水, 넓은 바다의 물가 연수硯水, 벼룻물라도 먹물 말아 못하견에못하겠네 야색夜色은 히미하고 상경三更은 재촉하니 〇상에우러러 보니 월색月色은 히미하고 행운은 구불구불 곡불진영哭不盡言, 울음으로서는 말을 다 표현할 수 없음이며 문불진언文不盡言, 글로서는 말을 다 표현할 수 없음이라 불매한 존영尊影은 아시는가 모르신가 동생 비비悲悲 애재哀哉 격사 상향

 

이 글은 ‘영양 천공 소상지일야라’에서 천씨千氏 집안의 제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천씨’는 단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곧 본관이 영양潁陽 하나밖에 없는 것이지요.

남동생이 67세에 유명을 달리 한 것이니, 이 제문을 쓴 주인공은 67세 이상의 할머니일 것입니다. 아마 70이 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이 누나는 문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서 2남 2녀의 어머니가 되었고, 4남매를 모두 성혼시켰습니다. 남동생은 이씨 가문의 사위가 되어 4남 2녀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되어도 남동생이 먼저 간 사실에 대해 애통해하는 장면이 읽는 사람의 머리에 떠오를 정도로 간곡하게 썼습니다.남동생의 장사를 지내고 시집으로 돌아가는 심정을 ‘피눈물를 압치마에 다마 안고 친택으로 도라가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지나도 남동생을 생각하는 것을 “봄에 피는 화초를 보고도 동생 생각, 여름 더운 날에 내리는 세우비에도 동생 생각, 가을에 단풍 휘날릴 때에도 동생 생각, 겨울 엄동설한 찬바람에 흰 눈이 내릴 때에도 동생 생각춘원에 만발 화초 봄소식에 동생 생각 하절 염천 더운 날에 세우비에 동생 생각 구주 단풍 휘날일 때 낙업성도 동생 생각 염동설한 찬바람에 백설비에 생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문장을 꾸민들 이렇게 애절하게 꾸밀 수 있을까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을 그대로 진솔하게 썼기 때문에 이러한 문장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축년에 썼으니 1913년일 것 같지만, 표기법상 ‘아래아’가 전혀 쓰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는 1913년으로 보기는 힘듭니다.그러니 1973년으로 추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한글 제문을 쓴 분이 거의 60대 말에서 70대 초일 것이니 그 표기는 20세기 초의 것으로 판단해도 좋을 것입니다.

 

여동생이 오빠의 제문을 올리다

 

다음 ‘한글 제문 2’는 여동생이 오빠가 돌아가시자 소상 때 쓴 제문입니다. 사진을 보도록 하지요. 이 제문은 세로가 31.5cm,가로가 107.6cm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한글 제문 2-1>

 

                                         <한글 제문 2-2>

 

본문을 한번 훑어 보시지요.

 

제문

유세차 경년 팔월 초사일 을묘일 제 아산 쟝실은 오라버님 소상 제젼 두어  글과 한  술노 고하노니 통하고 절통할 남다른 우리 남 억만 슬인 심즁소회心中所懷 자 업 나 오 무엇으로 표시할고 오호 통제라 기년 팔월달 당한 가화家禍 쳔지일월天地日月 혼동한 듯 참혹하고 통한 일 오 젼 고할나니하려니 가지가지 비참한 일 흉쟝胸臟, 가슴이 막막하여 엇지 다 하오리가 오호 통며 오호 라 육십 노경老境 부모 젼에 허무참상虛無慘狀 통 상심 이문 가문李門家門, 이씨 성의 가문 우리 부모 만리장춘萬里長春 우리 형님 수복강영壽福康寧 부귀다남富貴多男 태산갓치 바라다가 신수가 불길하여 촉시 허몽虛夢이라 오호 통제 오호 통제 철이 성 어린 긋들것들 처롭고 글이도다 애중한 우리 제아 다만 형제 위기타가 고적하게 혼로다 오호 통며 오호 라 원한 다수 우리 남형男兄, 오빠 객지 사업 하노라고 부모 동기 쳐 간 사시쟝쳔四時長天 이별하고 엄동설한 삼복더위 주야를 가림 업시 고셍고셍하시다가 한 번 성공 못 해 보고 한갓 포한抱恨, 품은 한 못 풀고서 절먼젊은 청춘 장장長長 청년 무슨 모진 병이 들어 쳔지 약이 무효로다 삼신산三神山 불약不死藥을 인력人力으로 구할손가 통 절통 우리 오 탄생 시 명목名目이 그인가 오호 통라 지즁지 길너 주신 부모님게 휴로다 출가외인 딸식은 길너 주신 부모님게 효도 효심 못 불이고 동기간 못 절기고즐기고 각각 츌가 흣터져서 그립다가 시시 상봉할지언정 북만산쳔北邙山川 가신 오 상봉할 길 영영 업서 비수悲愁 얼인어린 제촉하 억수 통곡하오리가 오호 통 샹향

 

이 제문을 쓴 여동생은 아산 장씨牙山 蔣氏 집안으로 시집간 사람입니다. 아마 오빠와 여동생 남매만 있는데, 오빠가 먼저 저세상으로 가고, 부모는 그대로 생존해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오빠는 객지로 돌아다니면서 사업을 하였는데, 부모가 60대일 때이니 매우 젊어서 부모보다 먼저 간 것입니다. 성공 한 번 하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버린 오빠에 대한 안타까움과 어린 남매를 두고 떠나서 더욱 가슴 아픈 심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 제문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기해년 8월에 이 집안에 큰 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오빠가 ‘철이’와 ‘성자’ 남매를 두고 간 것 같습니다.

경자년은 1960년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1959년에 어떠한 일이 생겨 오빠가 어려운 일을 당했는지는 기록하지 않고 있지만 저세상으로 간 오빠가 알고 있는 듯이 쓴 글입니다.

 

아들이 어머니의 제문을 올리다

 

‘한글 제문 3’은 아들이 어머니께 올린 제문입니다. 어머니 소상 때 올린 제문인데, 매우 길지만 여기에 전문을 소개합니다.모두 2,221자로 원고지 약 11장이 넘는 분량입니다. 크기는 세로 24.0cm, 가로 223.0cm입니다. 그래서 사진은 다섯으로 나누어 싣습니다.

 

 

                                          <한글 제문 3-1>

 

                                         <한글 제문 3-2>                         

 

                                         <한글 제문 3-3>

 

                                         <한글 제문 3-4>

 

                                         <한글 제문 3-5>

 

본문을 보시지요.

 

유세차 무술 정월 병인삭 이십구일 갑오甲午은 즉 친당親堂, 친부모자주 유인孺人 김영 김씨金寧金氏 소상지일야小祥之一夜라 전일석前日夕 계사癸巳에 불초자 기한은 근이 비박지젼鄙薄之奠, 보잘것없는 제사 음식으로 재배통곡우 오호 애재며 오호 통재라 고어古語, 옛말에 하엿시되 지졍무사至精無事, 깨끗하고 탈이 없다 일너시나 천지간天地間에 불초한 자식 데여되어 자주 존영尊影 젼에 무삼 소회所懷 자아내여 다번기多煩하게, 번거롭게 고하릿가 천지가 부판剖判, 갈라짐데여 억만 인생 생겨나서 선악善惡이 상반相反이라 어머니 착한 심덕心德 만단萬端으로 노력하와 자여子女들 생산할 졔 간삼년間三年, 삼년 동안에 년생緣生, 인연으로 생겨남하와 우리 팔남매를 잔밥잔식구에 무더 두고 금옥갓치 사랑하며 셜 츄석 명절 에 이복衣服 신발 곱기곱게 입펴 남부렵기 기리실 졔기르실 제 남경여직男耕女織, 남자는 농사를 짓고 여자는 길쌈을 하다 본업으로 남자는 글을 일켜읽혀 긔 성명姓名 긔록하여 선영행화先塋行化 이여 놋코 여자는 길삼시켜 본업에 종사하고 각각으로 치혼治婚할 졔 고가셰족故家世族, 여러 대에 걸쳐 세도를 누린 큰 집안 빗난 문에 금슬우지琴瑟友之, 부부간의 금슬이 좋아 친구처럼 지내는 것 성치成就시켜 말년영화末年榮華 바래든니바랬더니 가운家運이 비색否塞, 운수가 꽉 막힘하와 우리 부주父主, 아버지 우연 병셰 위즁하야 무당巫堂 경각頃刻 씰대업고쓸데없고 천방만약千方萬藥, 천 가지 처방과 만 가지 약 무령하와 수월數月 신음타가 응급 별셰하시오니 일월이 무광無光하며 천지가 함흑含黑, 검음을 머금다한대 더우나 우리 모주母主, 어머니 붕성지통崩城之痛,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우는 아내의 울음 당하시와 쳔추에 여한이라 셰월이 여류如流하와 삼상三霜, 흰옷을 입고 상제로 있는 삼년이 지낸 후에 설상에 가상으로 장정壯丁하신 우리 형님 우연이 득병하와 천방 만약 구원하되 백약이 무호無效하니 천명天命이 그인지 생전불호 기치놋코 홀연 별셰하시오니 당상백발堂上白髮 우리 모주母主 서하지참西河之慘, 부모가 자식을 잃은 참혹함 억울하다 그 중간 격근겪은 심회 엇지 다 말하릿가 널버신넓으신 마음으로 고생을 영화로 생각하고 재쥬 형졔게 락을 붓처 주경야독晝耕夜讀 고훈敎訓하여 부급종사負笈從師, 책 상자를 지고 스승을 따름 시기오니 말년자미末年滋味 혼자온닷 사람 생전 즐길 락자 별셰 사후 슬플 애자 자고이래 사람마다 상사喪事라고 하지마는 부모형제 친척 간에 별셰 날이 하직된니 존비귀천尊卑貴賤 물론하고 슬픈 정곡情曲, 간곡한 정 일반이라 오륜을 생각하고 이내 몸을 도라본니 애애哀哀하신 모주여 구로생육劬勞生育, 자식 낳고 기르는 수고하실 적에 은공 놉아 하날이요 자정慈情 깁픈 바다이라 하날같치 높은 공과 바다같이 깊은 정을 호심孝心으로 갑사오며갚으며 정셩으로 가파 낼가갚아 낼까 그 은공을 갚을진대 활부봉양割膚奉養, 양식이 부족해서 자신의 살을 베어서 부모를 봉양함 부족이라 통재며 애재라 오늘밤 영혼 전에 오호 애재 통곡하니 호천呼天,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음이 망극이요 일월이 무광이라 자고로 사람마다 별셰하면 다 이련가 작년 이 달 하신 말슴 어이 그리 못 듣는고 작년 이 달 보든 얼굴 어이 그리 못 보는고 부모된 그 자정은 별반이 후박厚薄 없지마는 자주慈主, 인자하신 어머니 같은 그 자정慈情은 이 셰상에 누 잇슬가 다남애多男妹를 길러낼 제 자식에게 친 자정 열 손가락 한가지라 아들 딸 차등 업시 애지중지하신 자정 어이 그리 유달한지 이리 귀케 기러낼 제 요조숙녀窈窕淑女 자부子婦, 며느리 보고 군자호기君子豪氣 사휘사위 보아 차례차례 성혼成婚하고 손부孫婦 증손曾孫 보고 백년 상수上壽 바랬더니 우연이 어든 병환 근근僅僅 해부하시드니 일조 일석에 홀련忽然 별셰하시오니 천지가 무너지고 일월이 무광이라 창천창천蒼天蒼天 이 무슨 변이리요 천도天道가 무심하고 신도神道가 무지無知튼가 염나왕이 무광턴가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합색이라 오호 통재며 오호 애재라 일차 왕림 바랫더니 금수셰게禽獸世界 보기 시러싫어 어느 곳을 향하시고 생리 백운白雲 높이 타고 지우제祈雨祭 행하시난가 공중에 구름 타고 신션 되로되러 가시넌가 춘산에 꽃 피여도 자주 생각이요 추야에 달 발가도 자주 생각이라 원수해 작년 차월 자주 가신 날을 날이 가고 달이 가매 어연간어언간에 오는 세월 다 긴다시 일년 삼백육십일이 순시간에 다 지나고 어마주 소상일이 어언간에 다은지라 무정세월은 가도 다시 오것마은 애중하신 어마주여 가시드니 못 오신가 보고 지고 자주慈主 얼골 듯고 지고 자주 말슴 사생死生 길이 멀다 한들 어이 이리 못 오시요 황천으로 가는 길이 몇 달이나 머러건대 그 길로 가는 사람 가면 다시 못 오는고 원수로다 황천길이 원수로다 황천길만 업섯시면 애중하신 자주며 아무리 머려서도 맛날 곳이 잇지마는 예로부터 죽는 사람 황천길을 못 마가서 별세한 그날부터 영결永訣 종천終天 하직下直이라 만고 영웅 진시황도 통일천하 그 도량에 지우만세 바랜 마음 어이 그리 지각업소만은 서책書冊 불에 살 제 다른 서책 살지 말고 죽을 사자 사라시면 후천지에 나온 사람 죽지 안고 사라 보지 애고 답답 자모주慈母主여 어이 그리 못 오신고 골룡산곤룡산 높은 봉이 평지되여 오실나오 삼철리삼천리 약수 물이 육지되면 오실나오 슬프다 우리 자주여 야월공산夜月空山 깁흔 밤에 실피 우난 두견죠야 너는 무슨 한이 깁퍼 불여귀不如歸로 우름 우노 인생 금수 다를망정 심즁에 깁푼 한은 너와 나와 일바일반인가 너의난 고국故國 생각 나의난 친당親堂 생각 어이 그리 다 갓튼냐 우리 동기 팔남매가 어무니어머니 음덕陰德으로 부귀복록富貴福祿 누릴 줄노 누구 업시 밋슴니다 친외손親外孫이 흥성하야 어무니어머니 산소 압해앞에 친외손 느려서서 천추향화千秋香華 밧자오면 자주 사후복록死後福祿 그 안이 조흐릿가좋으리까 혼령이 생각하시고 아모조록 도으소서 지리한 심즁설화心中說話 저저히這這히, 있는 대로 낱낱이 다 하재면 의희한依稀한, 어렴풋한 황촉 하에 듯삽기 장황할 닷 대강 주리고줄이고자 하오니 불매하신 존령尊靈은 근이 일배쥬一杯酒로 박하오나 서기 흠격歆格하옵소서 오호 애재 상

 

남자가 쓴 제문은 매우 절제되고 간결하여 짧을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오히려 여자가 쓴 제문보다 더 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들이 생각하기에 어머니의 한평생이 너무 기구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머니가 8남매를 낳았는데 그 동안 남편제문 작성자의 아버지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3년 뒤에는 맏아들까지 저세상으로 보냈을 때의 심정을 헤아려 되돌아보고,그래도 남은 자식들과 여생을 평안하게 지내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홀연 세상을 하직하신 어머니의 일생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적고 있습니다.

이 제문을 쓴 아들의 이름은 ‘기한’입니다. 성은 알 수 없고 나이도 짐작할 수 없는데, 어머니는 김씨이고 본관은 김녕입니다.즉 김녕 김씨金寧金氏입니다. 형님이 먼저 돌아가셨는데 이 제문을 쓴 기한이란 아들은 맏아들이 아닙니다. 4남 4녀 중 둘째 아들쯤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제문에서 우리 서민들의 어머니들이 어떻게 자식 교육을 시켜 왔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남자에게는 주경야독, 즉 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독서하는 것을, 여자에게는 길쌈 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들 서민들이 가장 행복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들은 요조숙녀인 며느리를 맞고, 딸은 군자와 같은 사위를 맞이하여 친외손을 많이 보고 오랫동안 무병장수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생활 문화재 속에 ‘수복강녕壽福康寧‘과 ‘부귀다남富貴多男‘이라는 글이 많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사랑하던 사람이 세상을 하직했을 당시에는 경황이 없고 슬픔이 극에 달해 돌아가신 분에 대한 그리움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이 더 커지다가 또 세월이 흐르면 그리움을 잊는 것이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운명입니다. 그래서 장사 지낼 때의 제문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소상과 대상 때의 제문이 많이 남아 있으며 또한 그 제문의 애절함도 더합니다.

 

한글 제문은 누가 썼을까요?

 

위에서 예를 든 한글 제문 1, 2, 3은 각각 누나가 남동생에게, 여동생이 오빠에게, 그리고 아들이 어머니께 올리는 한글 제문입니다. 그러면 한글 제문을 쓴 사람은 돌아가신 분과 어떤 관계에 있는 분일까요?

1998년 안동민속박물관에서는 안동 지역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글 제문 편을 모아 사진과 함께 <안동의 한글 제문학술 총서6집>이란 책을 펴냈는데, 여기에는 94편의 한글 제문이 실려 있습니다. 이것을 분석해 보면 누가 한글 제문을 썼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결론을 말하면,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한글 제문을 쓰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은 것은 아들이 어머니께 올리는 제문이고, 이어서 아들이 아버지께 올리는 한글 제문입니다. 아들이 부모님의 상을 당했을 때 쓰는 제문이 가장 많은 것은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사위가 장모에게 올리는 제문이 그 뒤를 잇습니다. 그 외에는 대개 다음과 같은 자료가 한두 편씩 실려 있습니다. 아래에 그 내용을 표로 보도록 합니다.

 

번호 제문의 대상 숫자 번호 제문의 대상 숫자
1 어머님 영전에 13 23 사돈 영전에 1
2 아버님 영전에 9 24 사친 영전에 1
3 장모님 영전에 9 25 삼종질부 영전에 1
4 고모님 영전에 4 26 선배 영전에 1
5 외숙부 영전에 3 27 숙모님 영전에 1
6 숙부님 영전에 3 28 시어머님 영전에 1
7 남편 영전에 2 29 아우 영전에 1
8 고종형 영전에 2 30 아재 영전에 1
9 누님 영전에 2 31 양어머님 영전에 1
10 동서 영전에 2 32 오라버님 영전에 1
11 사형 영전에 2 33 어머니가 딸 영전에 1
12 종형님 영전에 2 34 외숙모님 영전에 1
13 처남 영전에 2 35 외조모님 영전에 1
14 처백부님 영전에 2 36 외종형 영전에 1
15 할머니 영전에 2 37 장인 영전에 1
16 친정어머님 영전에 2 38 재종질부 영전에 1
17 누이 영전에 1 39 제종매 영전에 1
18 대종숙 영전에 1 40 종고조모님 영전에 1
19 백모님 영전에 1 41 종제 영전에 1
20 부인 영전에 1 42 친구 영전에 1
21 큰오라버님 영전에 1 43 형님 영전에 1
22 할머니 영전에 1 44 기타 6

 

가장 안타까운 제문은 어머니가 딸에게 쓴 제문입니다. 16세에 시집을 보내고 19세에 저세상으로 간 딸의 죽음 앞에 어머니는 “장유유서 분명커든 선후도착 왠 일이냐”고 애절한 심정을 읊고 있습니다.

위의 검토를 통해서도 알 수 있겠지만, 우리가 추측했던 것과 같이 여성들만 한글로 제문을 썼던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글 제문을 썼습니다.

 

한글 제문은 주로 어느 지방에서 썼을까요?

 

한문으로 쓴 제문은 전국 어디에서나 발견되지만 한글 제문은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지 않습니다. 한글 제문은 다른 지방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고 주로 영남 지역에서만 발견됩니다. 강원도 지역에서 가끔 한글 제문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그 제문은 가족이 영남 지역과 연관된 경우에만 발견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영남 지역에서도 주로 경북 지역에서 발견되며, 그 중심 지역은 대체로 안동, 예천으로 추측됩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경북의 남부 지역에서도 보입니다만 극히 적은 수입니다.

왜 이 지역에서 한글 제문이 유행하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 물아 보아도 그 이유를 아는 분이 없었습니다.다만 이 지역이 이전부터 한글로 쓴 내방 가사가 많이 전래되고, 안동 지역이 내방 가사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안동 지역의 사대부 집안은 물론이고 일반 평민들의 장롱 속에는 아직도 한글로 쓴 가사 작품이나 한글 편지 또는 한글 제문이 들어 있습니다. 주민 모두가 한글로 글을 쓰는 것이 생활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글 제문이 이 지역에서 쏟아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음식디미방>과 같은 문헌도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한글 제문이 유행하면서 이 지역에서는 한문으로 된 제문을 한글로 번역한 제문도 등장하게 됩니다. 예컨대 ‘숙종 대왕 민비 제문’이라든가 ‘회재 선생 제문이언적의 제문’ 등이 한글로 번역되어 전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그 사진을 보도록 합니다.

 

                                                      <숙종 대왕 민비 제문>필자 소장

‘숙종 대왕 민비 제문’은 크기가 세로 27.0cm, 가로 73.0cm입니다. 민비는 여흥 민씨로 숙종의 1대 계비繼妃인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년~1701년가 되었는데 장희빈으로 인하여 폐위되어 궁에서 쫓겨났다가 갑술환국으로 다시 복위되어 궁중으로 되돌아왔으나 얼마 되지 않아 창경궁 경춘전에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숙종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민비의 제문을 지었습니다.이것이 한글로 번역되어 있는데 안동 지역에서 나온 자료입니다.

 

 

                                 <회재 선생 제문 1>필자 소장

 

                                        <회재 선생 제문 2>

 

                                         <회재 선생 제문 3>             

 

                                          <회재 선생 제문 4>

 

‘회재晦齋 선생 제문’은 크기가 세로 27.0cm, 가로 206.5cm인 장문의 제문입니다. 회재 이언적李彦迪, 1491년~1553년은 평안북도 강계江界로 유배된 1548년에 어머님 손씨가 별세하여 적소에 부음이 도달하자 통곡하며 서러워하고, 조석전을 올리면서 호곡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질인 이순임李純任으로 하여금 고향에 계시는 영위 앞에 제사케 하고 제문을 올렸다고 합니다. 이 한글 제문 역시 ‘숙종 대왕 민비 제문’과 동일한 글씨로 쓴 것이며 한 집안에서 나온 것으로 역시 안동 지역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글 제문은 언제부터 쓰였을까요?

 

그렇다면 한글 제문은 언제부터 쓰여 왔을까요? 필자가 지금까지 발견한 한글 제문들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모두 20세기 이후의 것입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숙종 대왕 민비 제문’, ‘회재 선생 제문’ 등이 있지만 이것은 한문 제문을 후대, 특히 20세기 이후에 한글로 번역한 것입니다. 흔히 발견되는 한글 제문들은 대부분 1930년대에서 1950년대에 쓰인 것이지만,안동 지역에서는 아직도 한글 제문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동민속박물관에서 편찬한 <안동의 한글 제문>은 20세기 이후, 그것도 20세기 후반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한글 제문을 수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는 각 제문의 작자가 표시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생존해 있는 분들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글은 원래 여성들이 먼저 사용해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입니다만 위에서 보듯이 다양한 사람들이 한글 제문을 쓴 것을 보면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 이유는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한글 제문들이 20세기 이후에 쓰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글로 제삿날 적어 두기

 

한글 제문은 대부분 소상 때나 대상 때 쓴 것들입니다. 그러나 한 집안의 제삿날은 대가족하에서는 매우 많아서 종가의 대를 이을 맏손자, 즉 종손宗孫이면 늘 제삿날을 머릿속에 달고 살아야 합니다. 제삿날을 잘 기억하지 못할 때에는 기일을 적어 놓아야 합니다. 마치 가계家系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족보를 써서 가지고 다니듯 기일도 일일이 적어서 가지고 다녔습니다.그 기일을 한글로 적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다음에서 그 예를 보시기 바랍니다.

 

제사기

 

이 ‘제사기祭祀記‘는 세로 10.9cm, 가로 5.6cm인 절첩형의 조그마한 수진본입니다. 그러나 펼쳐 놓으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길이가 33.6cm나 됩니다. 제목은 ‘제기’라고 되어 있고 5대조고五代祖考, 5대조 할아버지부터 시작하여 ‘종조從祖, 종조할아버지 즉 할아버지의 남자 형제’까지 적혀 있습니다. 아직 부모님의 기일이 적혀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 분이 기록한 것입니다.

 

 

                                            <제사기>필자 소장

 

전주 이씨 기일기忌日記

 

전주 이씨 기일기는 집안의 기일을 써 놓은 것으로 보이는데, 역시 절첩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로가 15.6cm이고, 가로가9.3cm입니다만, 펼쳐 놓으면 가로가 144cm나 됩니다. 이 한글 기일은 전주 이씨의 선조인 목조, 익조부터 시작하여 졍종 대왕까지만 적혀 있으니 정조 시대에 쓴 한글 기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조선 왕조 왕의 기일을 적어 놓은 것이어서, 전주 이씨 집안의 기일을 적어 놓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주 이씨 기일기 1>

 

                                          <전주 이씨 기일기 2>

 

                                        <전주 이씨 기일기 3>

 

생가 기일生家忌日과 양가 기일養家忌日

 

양자로 간 아들이 자신이 태어난 생가 집안의 기일과 양자로 간 집안의 기일을 적어 놓은 문서입니다. 세로 11.4cm, 가로5.5cm의 크기로 접어 놓은 것인데 좌우로는 5등분하고 상하로는 2등분하여 접어 놓았습니다. 이것을 펼치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로 22.8cm, 가로 24.2cm입니다. 이 기일은 사람별로 적지 않고 기일을 먼저 적고 아래에 그 기일에 제사를 지내야 할 사람을 적어 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생가에서는 5대조 선조부터 제사를 지내고 양자로 간 양가에서는 고조 때부터 지내는데 양부모님은 다 돌아가셨군요.

 

 

                                  <생가 기일과 양가 기일>필자 소장

생가 기일기生家 忌日記

 

이 문서는 봉피가 있고 그 속에 문서 한 장이 들어 있습니다. 봉피에는 ‘〇〇〇生家忌日記생가기일기’란 글자가 보이는데, 〇〇〇는 아마도 사람 이름일 것입니다만 이 문서가 다른 곳으로 흘러갔을 때를 생각하고 먹으로 지운 것으로 추측됩니다. 속에 들어 있는 문서는 오른쪽에는 한자로 ‘生家忌日생가기일’, 그 아래에 ‘辛亥年十一月日記신해년십일월기’라고 적혀 있습니다.신해년을 아무리 늦은 시기로 보아도 이 문서는 1911년이나 그 이전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글 표기법으로 보아서는 1851년이나 그 이전인 1791년에 작성한 것입니다. 문서의 크기는 세로 12.6cm, 가로 49.0cm입니다.

이 문서를 쓴 사람의 이름은 ‘허영돈許永敦‘입니다. 허씨 가문의 기일을 적어 놓았는데 ‘백당伯當, ‘‘을 잘못 쓴 것입니다부터 적어 놓았지만 이름을 모르는 분이 있어서 ‘휘‘라고만 적고 그 아래에 이름을 적지 않은 것이 여럿 보입니다. 이름을 적은 것은 6대로부터 12대까지입니다.

 

       <생가 기일기 봉피>14.3cm x 5.8cm

 

                                           <생가 기일기>

 

                                   <생가 기일기 한글 부분>

 

다른 집에 양자로 갔는데 생가의 가문적家門籍이 없고 또 부모가 자신을 늦게 낳아서 가문적을 자세히 모르고 하던 차에 세계世系를 적은 헌 쪽지를 발견하고 이를 베껴 쓴다는 내용이 한글로 적혀 있습니다.

한글로 적은 부분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金海 許氏 出系 曾孫 第二 永敦니 가문젹이 다 업고 부모 만으로 자셔이 알 길 업셔 모로 일 만코 긔일도 모로더니 쳔만 의외예 흔  셰계 각을 어더 보니 가 긔일 자셔이 알고  벌은 벳계 돌목기 당숙 의 두고  맛치  벌 여 두니 이만 글도 아니니 보다 나은 뫼양이나 심고 붓그럽기 긔지업시나 혹 이후에 입후을 시기든지 일치 말고 자손지 아 두에야 양기본니 아니니 글 자손니 나거든 다시 번역여 잘여라 젹어 두나 글시 다 붓거럭도다 심고 통곡쳐라 고 고 나도 엇지다 글 못고 이 서럼을 밧고 후더런 글 일기 싀릐여 말고 이걸 보아라 단문 죄로 소소이 여 두고 시부나 강 젹어 두니 일키나 말고 잘여 일후 자손니 번녁기 바다 젼의 지취 동셩이라도 입후을 시기겟노라 무이 나 셔문으로 노라

 

‘돌목이’라는 지명으로 보아 글을 쓴 사람이 사는 곳이 ‘충북 옥천군 청성면 양저리’가 아닐까 추정되지만, ‘돌목이’ 이외에 ‘돌목’이라는 지명도 꽤 있어서 지역은 결론짓기 어렵습니다. 이 기록에서 “고 고 나도 엇지다 글 못고 이 서럼을 밧고 후더런 글 일기 싀릐여 말고 이걸 보아라 단문 죄로 소소이 여 두고 시부나 당 젹어 두니 일키나 말고 잘여 일후 자손니 번녁기 바다”는 글이 있어서 한자, 한문을 못 배운 서러움을 하소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자와 한글에 대한 서민들의 인식이 어떠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흔치 않은데, 이 한 조각의 문서에서 그 문자에 대한 인식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언문과 한자에 대한 소회를 밝혀 놓은 것입니다. 만약에 자손들이 글을 모르면 입후入後, 양자를 들임까지 하여서라도 알아 두도록 하겠다는 비장한 글입니다.

 

이렇게 한글로 기일을 써 놓은 것은 제사를 지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삿날에는 한글로 쓴 제문을 낭송하며 고인을 추모하였습니다.

 

마무리

 

한글 제문을 몇 가지 소개해 드렸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많은 한글 제문들을 다 소개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소개해 드린 한글 제문이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도 아닙니다. 이보다 더 잘 쓴 제문도 많은데 주로 딸들이 쓴 제문들이 많아서 다양한 한글 제문을 소개하다 보니 그 제문들을 소개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여기에서 소개하지 못한 한글 제문들은 필자의 누리집홈페이지에 그림 파일로 올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이곳에서 자료를 보시기 바랍니다.

 

홍윤표의 국어 연구 누리집 바로 가기 http://www.hongyp.co.kr

 

한글 제문들을 보면서 우리말과 우리글이 우리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얼마나 적절한 것인가를 생각하고, 이들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존재인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글 제문처럼 일정한 형식을 갖추면서도 그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이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서슴지 않고 써 나간 글도 드물 것입니다. 어떤 감상문도 이렇게 진솔한 내용을 담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글 제문에는 약간 과장하여 표현한 면은 있어도 거짓은 없습니다. 물론 고인이 된 분들을 욕되게 하는 글도 없습니다. 살아 계셨을 때 그렇게 대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저세상으로 가신 후에야 글로써만 그렇게 대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인생인가 봅니다.

이 한글 제문을 통해서 우리는 서민들의 가정사와 생활사를 한눈에 보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선조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잠시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글 제문은 여러 가지로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글_홍윤표

 

홍윤표

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어학회 회장, 국어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장을 지냈다.동숭학술연구상, 옥조근정훈장 등을 받았으며 <근대국어연구>, <17세기 국어사전>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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