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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개인전 연 양혜규씨

미술가 양혜규(42·얼굴 사진)는 인문사회학자 같다. 작가는 일정부분 인문주의자이긴 하지만 미적 조형성을 바탕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 체제 등 인간 삶을 규정하는 조건과 환경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늘 정치사회 체제에 대한 언급을 하는 그의 작품에는 진보적이고 사회참여적인 작가의식, 자기성찰적 사유가 녹아들었다. 명쾌한 논리 위에 창의적이고 섬세하게 빚어진 작품은 설득력을 갖게 되고,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공간의 정치사회학적 문맥을 날카롭게 분석한 장소 특정적 작품들은 세계 미술계의 반향을 부른다.

우리의 굳어져버린 사고와 감성에, 그리고 보다 나은 세상을 가로막는 체제에 흠집을 내려는 작가 양혜규. 그가 프랑스에서 첫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있다. 유럽의회가 있는 도시 스트라스부르의 ‘스트라스부르 근현대미술관’과 이 미술관 산하의 유서 깊은 복합문화공간 ‘오베트 1928’ 두 곳에서다.

작품전 마지막 점검 중이던 양혜규를 지난 3일 스트라스부르에서 만났다. 그는 “기존의 시스템, 프레임에 딴죽을 걸며 변화를 추구한, 추구하는 인물과 사건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현재 스웨덴 말뫼미술대 교수인 그는 “세상의 변화를 분석하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지닌 미술가, 파급력을 지니는 미술가를 원한다”며 “미술로 정치·문화·사회·경제 등 세상 모든 것을 풀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 명쾌한 논리·작가의식 갖춘 인문학자풍의 국제적 작가
2년여 프랑스 전시 준비하며 문화·예술철학 분야에 심취

▲ 돌 흙 세라믹 등 전통 소재와 현재 프레임의 변화 추구한
‘홈리스’들에게 관심 많아

– 1990년대 작품부터 신작까지 작품이 총망라된 전시다. 초대전을 여는 소감은.

“2년여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프랑스 문화와 모더니즘, 모더니스트, 다다 등 많이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오베트 1928’은 화가이자 건축가인 테오 반 되스부르크, 한스 아르프와 부인인 소피 토이베르 아르프가 실내건축 디자인에 참여한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이들 3명이 함께 작업한 이 보석 같은 공간, 서구미술사의 현장에 있다는 거 자체가 공부다.”

양혜규는 “이제 프랑스를 만날 준비가 조금 된 것 같다”며 프랑스 진출에 대한 자신감도 내비쳤다. 유럽, 미국 등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는 그는 1996년부터 베를린을 근거지로 삼아 ‘홈리스’를 자처하며 국경을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한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독일 카셀도큐멘타 참여를 비롯해 영국, 미국, 스페인 등에서 굵직굵직한 초대전을 가졌다. 올해도 일정은 빡빡하다. 지금도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중앙홀에서 전시 중이다.

– 탁월한 공간분석으로 유명한데.

“작가라면 눈에 보이진 않지만 공간이 간직한 정치·사회·역사적 문맥을 읽어내야 한다. 그 분석을 작업과 연계시키는 것이다. 작가의 특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개인전이라면 더욱 기존 작가들과는 다른 신선하고 새로운 자기만의 공간해석을 해야 한다.”

– 아이디어는 주로 어떻게 얻나.

“책도 읽고, 공부를 한다. 그것보다는 전문가를 많이 만난다. 사실 젊은 시절 전시장이 아니라 콘퍼런스, 포럼을 많이 다녔다. 그곳에선 전문가와의 만남,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개념 연구, 깊은 사유가 가능하다. 최근 레바논 베이루트를 다녀왔는데 얻은 게 많았다. 요즘 다시 허기가 진다.”

그는 지금의 작업들, 굳건한 철학적·논리적 배경이 녹아든 작품들의 원천이 역사와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포럼 등에서의 공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 블라인드, 빨래 건조대 등 평범한 일상 소재들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 게 신선하다.

“한국에서 전통적 미술교육을 받고 독일에 왔다. 독일에서 공부할 때 기존에 배운 것들을 전혀 생각하지 말고, 아예 다르게 하자고 다짐했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기존 교육의 오염에서 벗어나도록 애썼다. 근데 요즘 들어 버렸던 세라믹, 흙, 돌 등 전통적 소재에 관심이 간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근현대미술관’ 입구의 양혜규 설치작품 ‘블라인드 커튼-삼색기 뒤쪽에 살색’.

그는 구체적인 오염의 내용을 묻자 “솔직하지 않은 작품” “주리를 틀 정도로 억지로 해야만 하는 경우” “젊은 날의 뜬구름 잡기 같은 그런 작업방식”이 싫었다고 말했다.

– 벗어나려고 하던 전통소재에 대한 관심은 자신만의 작업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으로 해석해도 되나. 또 세라믹 등을 향후 작업의 새로운 재료로 볼 수 있는가.

“그동안 다뤄온 재료들은 계속 가져갈 필요가 있다. 물론 새 재료를 추가해야겠지.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라믹 등 수공예적인 것에 관심이 자꾸 간다. 작년 싱가포르 레지던시에선 판화만 계속했다. 조만간 영국 글래스고 레지던시에선 세라믹과 철공, 목공 작업을 할 생각이다.”

양혜규는 인터뷰 중간중간 소피 토이베르 아르프를 자주 언급하며 그의 ‘하이브리드적 작품활동’과 “모두를 수용하는 점” 등을 강조했다. 또 “그의 작품 ‘쿱 다다’는 초현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고, 그런데 카리스마도 있다”며 “그의 작품활동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 이 시대 미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저는 욕심이 많다(웃음). 칼이 있으면 호박이라도 찔러야 한다는 생각이다. 세상의 변화를 제대로 분석, 비전을 갖고 제대로 된 미술을 하고 싶다. 우리가 아는 훌륭한 사람들은 모두 눈물나는 신념이 있었다. 최근 윤이상 부인 이수자 여사가 쓴 윤 선생 관련 책을 읽고 펑펑 울었다. 에드워드 사이드와 다니엘 바렌보임의 대담집도 감명 깊었다. 이 대담집을 보면 음악으로 정치, 문화, 사회 등 모든 것을 풀어내고 훑어내린다. 새로운 미술, 미술로 그러고 싶다.”

– 그간의 작품 속에는 항일운동가 김산,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녹색혁명가 페트라 켈리, 재일 서경식 교수 등이 언급되고 있는데.

“나는 그들을 ‘홈리스’라 부른다. 노마드, 디아스포라 개념 등도 있지만. 이 홈리스들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다른 게임을 요구한다. 지금 시스템, 체제로는 감싸안을 수 없음을 보여준 사람들이다. 지금, 현재의 프레임에 딴죽을 거는 그들에게 관심이 많다.”

양혜규 작가는 체제가 품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 사건을 통해 지금의 우리 체제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것이다.

양혜규의 스프레이 페인트 작업인 ‘비 접기-기하학적 넘어뜨리기 #19’.

 

■ “독창적이고 견고하며 섬세한 조합” 극찬
설치·평면·사진 등 1990년대 작품부터 신작까지 소개

양혜규 작가의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근현대미술관 전시는 그의 진면모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신작을 중심으로 1990년대 작품부터 100여점이 총망라된 데다, 설치와 평면·사진·영상등 다양하다.

전시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보고·듣고·체험하고·돌리고 등 보여주는 방식 도 다채롭다.

‘동음이의어의 가계’란 이름의 전시는 스트라스부르 근현대미술관, 오베트 1928 두 곳에서 지난 8일 개막해 9월15일까지 계속된다. 스트라스부르 근현대미술관 카밀 귀틀레르 큐레이터는 “그의 작업 특색인 독창적이며, 견고하고도 섬세한 조합, 정치·사회·문화 체제에 대한 발언 등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전시회”라고 말했다.

미술관 입구에는 높이 7m에 이르는 블라인드 설치작품인 ‘블라인드 커튼-삼색기 뒤쪽에 살색’이 관람객을 맞는다. 입구라는 건축적 조건을 바탕으로 알루미늄 블라인드를 정교하게 조합한 작품은 보는 위치, 각도 등에 따라 변화무쌍한 공간감, 색감, 풍경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전시는 1~2층 모두 7개의 전시실과 각층의 로비 및 복도 공간에서 펼쳐진다. 망가진 색종이 접기 오브제에 검은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 입체를 평면으로 변환시킨 연작 ‘비 접기-기학학적 넘어뜨리기’ 신작, 각종 건축자재 카탈로그에서 이미지를 오려내 평면에 구성함으로써 사물이 지닌 실용성 이상의 가치에 물음을 던지는 ‘건축자재상 콜라주’ 신작 등이 대표적이다. 편지봉투의 보안 무늬를 활용한 콜라주 작품 ‘신용양호자들’ 연작, 블랙 팬서(1960년대 미국의 급진적 무장 흑인결사) 관련 사진 등을 통해 아직도 진행 중인 사건이지만 잊혀지고 있음을 비판하는 ‘회전하는 노트’ 등도 주목받는다. 오베트 1928에는 움직이는 조각품인 ‘의상 동차-음양’과 ‘의상 동차-지그 재그’, 방울을 엮어 만든 ‘소리나는 의류’ 등이 선보여 관객이 체험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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