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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말았으니 달리 살아야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책을 읽고 말았으니 달리 살아야지

등록 : 2013.06.16 20:32

정혜윤의 새벽3시 책읽기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자음과모음·1만3500원

지난해에 <삶을 바꾸는 책 읽기>라는 책을 내버렸기 때문에 정말로 책이 삶을 바꿨냐는 질문을 백번쯤 받았다. 그 질문은 이렇게 바꿔도 좋을 것 같다. “책을 읽어서 가장 좋은 점은 뭐였어요?” “음, 책을 읽어서 가장 좋은 건요, 유명한 책을 읽고 교양을 쌓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게 아니라요, 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책이 없었으면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테고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도 몰랐을 거예요.”

몇 년째 읽고 쓰고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아!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하고 어렴풋하게라도 알게 되는 순간이다. 읽지 않았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읽기 전과는 어떻게든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내게 니코스 카잔차키스, 도스토옙스키, 밀란 쿤데라, 세사르 바예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달랑 일곱 권밖에 팔리지 않았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가 인간의 의지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의지란 것에 대해 아예 몰랐을 수도 있다. 몽테뉴가 살아가는 기술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자신을 관찰하는 법도, 표현하는 법도 몰랐을 것이다. 그들이 있어 주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들이 책을 내주어서 내가 그나마 판단이란 걸 하면서 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사사키 아타루가 지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읽다 보니 내가 <삶을 바꾸는 책읽기>에서 어떻게든 표현하려 했던 말이 명확하게 나와 있었다. 그는 ‘책을 읽었다’가 아니라 ‘책을 읽고 말았다’라고 말한다.

“읽고 만 이상, 거기에 그렇게 써 있는 이상, 그 한 행 한 행이 아무래도 옳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이상, 그 문구가 하얀 표면에 반짝반짝 검게 빛나 보이고 만 이상, 그 말에 이끌려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책을 읽고 그대로 살아버리겠다는 것은 어리석음이지만 우리에겐 바로 그런 어리석음이 결여되어 있다”고 한다. “발터 베냐민이 말했습니다. 밤중에 계속 걸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리도 날개도 아닌 친구의 발소리다, 라고요. 발소리를 들어버렸던 것입니다. 도움을 받아버린 것이지요.”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친구의 발소리는 안심만 시켜주는 게 아니라 아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멀리 걸어갈 수 있게 한다. 그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빌려서 책은 신마저도 인간을 부러워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최후 심판의 날 위대한 정복자, 법률가, 정치가들이 그들의 보답-월계관, 불멸의 대리석에 영원히 새겨질 이름-을 받으러 왔을 때 신은 우리가 옆구리에 책을 끼고 오는 것을 보시고 사도 베드로에게 얼굴을 돌리고 선망의 마음을 담아 이렇게 말씀하시겠지요. 자, 이 사람들은 보답이 필요 없어. 이 사람들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이 사람들은 책 읽는 걸 좋아하니까.”

이렇게 책읽기는 즐거운 것이지만 사실은 책읽기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 한 줄 한 줄 목숨을 걸고 써내려간 것을 직면하는 일이니까. 어두컴컴하고 빽빽한 책의 숲에서 어떻게든 친구의 발소리를 찾아내고 자신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쿵쿵 발소리를 내려는 독자들은 존재한다. 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은 이상, 자신의 발소리 또한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위대한 작가가 낳은 최고의 작품은 위대한 독자라는 말을 나는 믿는다. 새벽 세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린다. 책이 탄생했던 그 순간부터 이어진 그 끝나지 않는 발소리가.

정혜윤 <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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