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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독서, 종이책 세대에게 더 많은 혜택 줄 것”

“디지털 독서, 종이책 세대에게 더 많은 혜택 줄 것”

ㆍ롤랑 바르트를 잇는 문학지성…프랑스 문학평론가 앙트완 콩파뇽

“디지털 독서는 이미 종이책을 읽었던 세대에게는 플러스 효과만을 줍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니터로 책을 읽은 세대의 경우 독서와 글쓰기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앙트완 콩파뇽(63·사진)이 한국에 왔다. 2011년 서울국제문학포럼 참가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불어불문학회, 주한프랑스대사관, 대산문화재단 초청으로 내한한 그는 지난 7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디지털 독서’라는 주제의 대중강연을 한 데 이어 8일에는 한국외국어대에서 열린 프랑스학 공동학술대회에 참가해 ‘보들레르의 반근대성’이란 기조연설을 했다. 강연 직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그를 만났다.

▲ “디지털 교육 세대에게는 변화는 분명하지만
그 변화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확정된 답은 아직 없어”

콩파뇽은 “과학기술을 공부했기 때문에 다른 문학가들에 비해 기술발전에 대해 관심이 많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라며 “최근 관심사 역시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책읽기와 문학을 바꿔놓을지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1월 ‘허핑턴포스트’ 불어판이 제작되면서 블로그 글쓰기를 제안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디지털이 소소한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10~15세 학생을 대상으로 콜레주 드 프랑스를 소개하는 설명회를 하면서 알게 됐는데 이들은 알파벳 순서를 외우지 못합니다. 종이사전을 쓰던 저희 세대와 달리 인터넷에서 모르는 단어를 찾기 때문이지요.”

콩파뇽은 e교과서로 수업하고 하이퍼 텍스트 덕분에 참고자료를 동시에 보면서 공부하는 세대의 등장에 대해 “변화는 분명하지만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확정된 답은 아직 없다”는 유보적 입장이다. 오히려 그의 관심사는 “인쇄서적과 디지털 세계 사이의 혁명과 같은 시점을 살고 있는” 중간 세대에 쏠려 있다. 이미 종이책으로 독서를 했던 사람들에게 디지털은 더욱 많은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점을 강조한다.

“2년 전,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의 멋진 애플리케이션이 출간됐습니다. 1957년에 나온 원작과 이본·초고, 작가의 미국여행 궤적과 여행 스케치, 체류 도시에 대한 감상과 지도, 작가의 전기와 가족사진, 비트 제너레이션에 대한 소개까지 포함돼 있는 보고(寶庫)입니다. 다른 책들도 이렇게 확장본으로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신문뿐 아니라 일반서적까지 컴퓨터 화면으로 읽는 데 12년이 걸렸다”는 그는 디지털 독서 예찬론자다. 그의 아이폰에는 프루스트의 <스완의 집 쪽으로>의 1913년 그라세출판사 판본과 1919년 갈리마르 판본이 저장돼 있다. “태블릿PC 덕분에 다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두꺼운 러시아·영국·미국 소설들을 다시 읽게 됐다. 어떤 책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고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건 정말 유쾌한 일”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독서와 더불어 우리의 독서는 비연속적·부분적·포착적 방식으로 변했습니다. 선(線)적인 개념의 책은 멸종의 길에 들어섰고, 이제 오래된 서적들을 계속 읽게 하려면 포맷을 바꾸는 것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러나 몰입하는 독서의 즐거움은 상대적으로 드물어졌지요. 허구에 사실성을 부여하는 상상력의 활용이나 처음 책을 접할 때의 신선하면서 긴장되고 길을 잃은 듯한 느낌도 부족해졌고요.”

그는 독서와 더불어 글쓰기의 변화도 지적한다. “출판사 관계자들의 말로는, 컴퓨터로 작성된 원고는 형태가 약간 느슨하고 주제를 이탈한다거나 첨언이 많고 뜻밖의 요소들이 느껴진다고 한다”면서 “디지털 거품으로 텍스트를 확장, 팽창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프랑스에서 e북은 전체 출판매출의 2%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국은 최근 들어 e북이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e북은 부정적 효과도 있지만 문학교육이나 e북을 통해 작품을 배포하는 작가들에게는 긍정적이면서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봅니다.”

디지털 독서에 대한 콩파뇽의 양가(兩價)적 입장은 모더니티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이미 확인됐다. 주요 저서인 <모더니티의 다섯 가지 역설>(1980)이나 <반(反)근대인들>(2005)의 기본 주장은 진정한 근대성은 반근대성이라는 것이다. 근대성 안에 있으면서도 저항하고 근대성이 버리려는 것을 보존하는 진정한 근대인으로 그가 꼽는 인물이 시인 보들레르다. 보들레르는 근대를 지향했지만 ‘우수’ 같은 작품 속에 근대를 통해 상실하게 될 요소에 대한 슬픔을 담아냈다는 것이다.

학자로서의 수련기에 롤랑 바르트를 비롯해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등에게 배웠던 콩파뇽은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이 전 세계 학계를 풍미한 현상에 대해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소쉬르가 나오는 동안 프랑스는 한참 뒤처져 있었기 때문에 전통에 억압받지 않는 참신한 사고가 등장했다”며 “당시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인문학이 민주화된 것도 68세대가 새로운 연구방법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롤랑 바르트를 잇는 문학지성으로 꼽히는 콩파뇽은 공학에서 문학으로 전향했다. 파리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한 뒤 파리7대학에서 마르셀 프루스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7대학, 미 컬럼비아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현대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국내에도 번역된 <모더니티의 다섯 가지 역설>을 비롯해 많은 저서를 발표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6092105105&code=9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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