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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챈들러

레이먼드 챈들러_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종결자

 

하드보일드(hard-boiled)라는 생소한 문학 용어가 어느 순간부터,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어렴풋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만큼은 귀에 익었으리라 짐작한다. 미스터리 애호가들을 제외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들 정도는 들어봤을 테고, 적어도 레이먼드 챈들러에 흥미를 느꼈을 법하다. 최근 서점가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대실 해밋 바람이 불었고, 상대적으로 더 유명한 헤밍웨이의 열풍은 올 하반기까지 여세를 몰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두 작가의 작품이 올해 들어 퍼블릭 도메인이 된 데다 FTA 체결이라는 초조감이 더해진 현상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드보일드란 사전적 정의로 ‘완숙한 달걀’이라는 뜻이며, 일반적으로 불필요한 수사(修辭)를 배제하고, 지극히 객관적인 시점에서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이 기법은 반드시 문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화 같은 매체에서도 통용되는 용어이다. 문학적으로는 헤밍웨이를 대표적인 하드보일드 문학의 시초로 보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인 192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싸구려 통속 소설 잡지를 통칭하는 펄프 매거진에서도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근대적인 의미에서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로 시작되는 추리소설의 역사는 미국에서 굳건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바다 건너 영국에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미국에서 밴 다인엘러리 퀸이라는 걸출한 미스터리 작가가 등장하지만 여전히 영국의 정통 퍼즐 미스터리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버거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대공황과 맞물려 유한계급의 오락거리로서의 퍼즐 미스터리에 반(反)하여 암담한 현실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속칭 싸구려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독자들의 감성을 건드린다. 이런 대중적인 인식은 금주법과 갱의 시대로 상징되는 1920년대에 유행한 싸구려 잡지에서 표면화되었는데 H. L. 멘켄과 조지 네이던이 창간한 <블랙 마스크>를 통하여 대실 해밋, 얼 스탠리 가드너, 캐럴 존 데일리,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작가들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51세의 나이에 첫 장편을 발표한 레이먼드 챈들러. 그가 창조한 탐정 필립 말로는 이후 수많은 탐정소설에서 인용되고 패러디되었다.

51세의 나이에 첫 장편을 발표한 레이먼드 챈들러. 그가 창조한 탐정 필립 말로는 이후 수많은 탐정소설에서 인용되고 패러디되었다.

 

그들의 터프한 탐정들은 싸구려 소설 속에서 볼 수 있는 급진적인 성향을 계승하였고, 미국 사회의 폭력과 불황기의 비참함을 반영했다. 이때의 펄프 매거진 작가들에게는 자신들의 작품에서 예술적인 성향을 구현할 의도는 애초에 없었고, 추리소설의 황금기 시대라고 불리던 당시 추리소설 작가들이 쓰는 방식과는 의도적으로 완전히 다른 형식의 글을 썼다. 폭력을 경멸하는 황금기 시대의 우아한 탐정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았던 하드보일드 속의 탐정들에게 있어서 폭력은, 그들이 작품 속에서 늘 술을 마셔대는 모습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당시 많은 펄프 매거진들 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잡지는 <블랙 마스크>였다.

 

<블랙 마스크>의 편집장은 유럽에 머물다 귀국한 육군 장교 출신의 조셉 T. 쇼 로, 그는 친구로부터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이 잡지의 편집을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쇼가 유럽에서 돌아왔을 당시의 미국은 금주법 때문에 알 카포네 같은 갱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암울한 상황이었다. 쇼는 암흑가의 범죄와 정계의 스캔들이 미국 사회를 좀먹는다고 믿고, 정경유착 등 미국 사회의 부패를 폭로하는 일이야말로 잡지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하여 <블랙 마스크>의 편집 기본방침으로 세웠다. 이 같은 방향에 조언을 한 작가가 이전부터 <블랙 마스크>에 기고를 해왔던 대실 해밋이었다. 쇼는 에즈라 파운드가 헤밍웨이의 초기 작품들에서 형용사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던 것처럼, 자신의 작가들에게 육체적인 흥분과 관계없는 것들은 모조리 제거하고 폭력이 넘치는 내용의 이야기들을 쓸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입체적인 캐릭터가 아니면 행동은 아무런 의미 없다.’고 강조했다.

 

당시 많은 펄프 매거진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잡지였던 <블랙 마스크>. 레이먼드 챈들러는 이 잡지를 통해 첫 단편을 발표했다.

당시 많은 펄프 매거진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잡지였던 <블랙 마스크>. 레이먼드 챈들러는 이 잡지를 통해 첫 단편을 발표했다.

 

<블랙 마스크>는 여러 명의 쟁쟁한 작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이 잡지를 통해서 ‘협박자들은 쏘지 않는다(Blackmailers Don’t Shoot)’(1933)라는 단편을 처음 발표한 레이먼드 챈들러도 있었다. 편집장 쇼가 그의 단편을 읽고 ‘이 작가는 천재 아니면 미치광이’라는 쪽지를 붙여 동료 편집자에게 넘겼다고 한다. 누구보다 편집장 쇼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작가는 대실 해밋이었다. 그는 잡지의 성격에 딱 맞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그의 작품들은 당시뿐만 아니라 후대에 하드보일드라는 용어를 확실히 각인시켰고, 한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무수한 모방과 재생산의 대상이 되었다.

 

“줄거리를 중시하는 추리소설의 결점은, 향기가 그윽한 브랜디를 마시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끝에 가서는 갑자기 수돗물을 마시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라며 황금기 시대의 추리소설에 코웃음을 날린 레이먼드 챈들러 또한 그의 에세이 ‘심플 아트 오브 머더(The Simple Art of Murder)’(1946)에서 황금기 시대의 고전 추리소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해밋은 단순히 시체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확실한 이유로 살인하는 사람들 손에 살인을 돌려주었다. 결투용 수제 피스톨이나 큐라레, 열대어 등이 아니라 손을 사용하는 살인 이야기를 썼다”고 말하며 그를 높이 평가하였고, 해밋의 기법을 고스란히 계승하여 더욱 세련되게 발전시켰다.

 

 

51세의 나이에 첫 장편 [빅 슬립] 발표

레이먼드 챈들러는 <블랙 마스크>에서 같이 활동한 유명 작가들 외에도 동시대에 해밋 유파로 불린 윌리엄 아이리쉬, 제임스 M. 케인, W. R. 버넷, 조나단 래티머 같은 뛰어난 작가들 사이에서도 단연 주목할 만한 작가였다. 그는 꽤 늦은 나이에 데뷔했는데, 첫 장편인 [빅 슬립(Big Sleep)](1939)을 발표했을 당시 나이는 무려 51세였다. 48세의 나이로 늦게 데뷔한 사립탐정 네로 울프 시리즈의 작가 렉스 스타우트 보다도 늦은 나이에 첫 장편을 발표하였고, 그가 영향을 받은 대실 해밋보다 실제로 나이도 더 많았다. 챈들러는 천부적인 글재주를 갖고 있었지만 자신의 재능에 맞는 분야를 찾는 데 50년이 걸린 것이다.

 

챈들러는 1888년 시카고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건너가 교육을 받았다. 20세에 국가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영국 해군의 창고 관리직을 얻었는데, 일생을 보장받고 1년에 6주의 유급휴가가 있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편한 직책이 지겹다며 6개월 만에 사표를 던지고 미국으로 돌아와 로스앤젤레스의 석유회사에 취직하여 부사장의 자리까지 오른다. 석유회사에 다니는 동안 챈들러는 평생의 배필 시시 파스칼을 만난다. 그녀는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었고 챈들러보다 무려 18세나 연상이었다. 결혼할 때 챈들러의 나이는 35세였고, 시시는 53세였다. 챈들러의 전기 작가인 프랭크 맥셰인 은 그의 저서 [레이먼드 챈들러의 생애(The Life of Raymond Chandler)](1976)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당시만 해도 시시는 늘씬한 몸매의 금발 미녀였다. 그녀는 개성이 강했고, 요리할 때는 나체가 되기를 좋아했다. 그전까지 전쟁에 참전하고 여러 직장을 전전했던 챈들러는 지친 상태였다. 그런 챈들러 앞에 나타난 시시는 성적으로 성숙해 있었고 지적으로도 챈들러의 상대가 될 만한 두뇌의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챈들러가 마흔을 넘었을 때 시시는 이미 예순에 가까운 나이였다. 결국 챈들러는 석유회사의 여직원과 관계를 맺게 되었고, 급기야 알코올중독으로 석유회사에서 해고당한다. 그의 나이 44세 때로, 직장에서의 해고는 그의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무일푼으로 장래에 대한 뚜렷한 목표도 없이 미국으로 왔던 20년 전의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었지만 20년 전과는 달리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은 나이였다. 그 시기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위기였는데, 그것은 그에게 필요한 위기였고, 당시의 경험과 실패는 이후 그의 발전에 큰 약이 되었다. 이때의 경험은 그가 쓴 소설의 배경이 된 남부 캘리포니아의 세계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고, 당시의 실패는 그에게 무슨 일이든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실직 상태였던 그는 잠을 못 이루는 밤에 읽으려고 <펄프 매거진>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1920년대 당시에는 <펄프 매거진>에 한 단어당 1센트씩 하는 원고를 팔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펄프 작가가 천여 명이 있었다. 잡지를 읽던 챈들러는 이런 잡지에 작품을 내면 원고료도 받고 소설을 쓰는 공부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초기 단편들은 사실 <블랙 마스크>에 실린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해밋과 같은 평판을 얻게 된 것은 [빅 슬립] 이후 7편의 장편을 발표하고 난 다음이었다. 그는 첫 단편 ‘협박자들은 쏘지 않는다’를 쓴 후 [빅 슬립]을 발표하기까지 5년 동안 <펄프 매거진>에 십여 편의 단편을 쓰며 작가로서의 도제 수업을 받았다.

 

첫 장편 [빅 슬립](좌)과 1953년에 발표한 [기나긴 이별](우)의 표지.

첫 장편 [빅 슬립](좌)과 1953년에 발표한 [기나긴 이별](우)의 표지.

 

 

그 5년간 그는 매우 가난했고 고독했다. 석유회사에서 해고된 후에는 술을 끊었기 때문에 술에서 위안을 찾을 수도 없었던 그가 오직 글 쓰는 일에 매진하는 동안 좌절과 생활고에 찌든 챈들러에게 큰 힘이 되어 준 사람은 아내 시시였다. 적은 원고료로 살림을 꾸려나가면서 늘 챈들러를 격려한 5년 동안 챈들러 안의 예술성은 그의 아내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인식을 통해 발전했다. [빅 슬립]이 1939년 알프레드 노프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을 때 미국에서 10,000부가 팔렸고, 챈들러는 2,000달러의 로열티를 받았다. 필립 말로가 등장하는 첫 장편이 챈들러를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 준 것은 아니었지만 탐정소설 작가로서는 큰 성공이었다.

 

출판사는 챈들러의 미래를 확신하고 다음 책을 계약하는데 이례적으로 초판 5,000부에 20%의 인세를 제안했다. 당시 작가들의 기본 인세율은 10%였다. 챈들러 역시 작가로서의 자신의 가능성을 확신했지만 평생 탐정소설을 쓸 생각은 없었다. 세 편의 탐정소설만 더 쓰고 순수 문학으로 전향할 계획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가 의도한 대로 되지 않았고, 후대의 독자들로서는 다행스러운 결과였다. 필립 말로가 등장하는 작품이 순조롭게 출판되는 1940년대에 그는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53년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1953)을 발표한 다음해 챈들러는 아내 시시와 그야말로 기나긴 이별을 하는데, 오랜 지병 끝에 죽은 아내를 못 잊던 챈들러는 다시 술에 빠지게 되었고,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된다. 아내 시시의 죽음은 그의 창작욕을 지치게 했고, 5년 뒤 필립 말로가 등장하는 미완성작 [푸들 스프링스(Poodle Springs)](1959)를 남기고 챈들러는 아내의 뒤를 따른다.

 

챈들러는 재래의 수수께끼 풀이에 초점을 맞춘 줄거리 위주의 추리소설과 사건의 해결이 미리 입력되어 있는 컴퓨터 같은 기존 탐정들에 대해서 식상함을 느낀 한편 로스앤젤레스의 밤거리를 비추는 네온사인 아래 뒹구는 빈 술병과 담배꽁초가 주는 공허한 절망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감성을 영국 명문 사립학교에서 배웠던 표준 영어의 문장 구조에 미국에서 접한 생기 넘치는 속어를 섞어 독특하고 신선한 문체로 자신의 작품에 표현했다. 챈들러의 작품 속에서 수수께끼 풀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독자들은 그의 작품에서 석유로 갑자기 부를 축적한 유한계급과 중류 백인 사회, 유색 인종들의 잡초 같은 삶이 뒤섞인 20세기 중반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그러한 사회를 바라보는 사회적 통찰력과 허무한 농담과 챈들러의 이상을 그대로 실현해 창조한 필립 말로를 읽을 뿐이다. 챈들러는 훌륭한 작가이자 훌륭한 비평가였다. 필립 말로를 통해서 사회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각과 따뜻한 감수성을 동시에 보여준 챈들러의 문학적 유산은 로버트 B. 파커, 마이클 코넬리, 로버트 크레이스, 월터 모슬리 등 많은 후배 작가들이 창조한 탐정들의 모습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끝으로 하드보일드의 두 거장 해밋과 챈들러에 대해 미스터리 비평가 케빈 버튼 스미스가 남긴 멋진 평을 인용한다.

“해밋은 이 비열한 거리가 어떤지 보여줬는지 모르지만, 챈들러는 자신은 비열하지도 않으면서 이 비열한 거리를 걸어가는 남자를 창조했다.”

 

참고문헌
[Bloody Murder], Julian Symons, [The Life of Raymond Chandler], Frank MacShane, [심플 아트 오브 머더], 레이먼드 챈들러, <계간 추리문학> 1990년 겨울호 No.8, http://www.thrillingdetective.com/trivia/chandler.html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 리스트

1. 장편

  1. no.발표연도제목
  2. 1 1939 빅 슬립 (The Big Sleep) (The Big Sleep)
  3. 2 1940 안녕 내 사랑 (Farewell, My Lovely) (Farewell, My Lovely)
  4. 3 1942 하이 윈도 (High Window) (High Window)
  5. 4 1943 호수의 여인 (The Lady in the Lake) (The Lady in the Lake)
  6. 5 1949 리틀 시스터 (The Little Sister) (The Little Sister)
  7. 6 1953 기나긴 이별 (The Long Goodbye) (The Long Goodbye)
  8. 7 1958 Playback
  9. 8 1959 Poodle Springs

2. 시나리오

  1. no.발표연도제목
  2. 1 The Blue Dalhlia
  3. 2 Double Indemnity
  4. 3 Strangers on a Train
  5. 4 Playback (미제작)

3. 단편

  1. no.발표연도제목
  2. 1 1933 Blackmailers Don’t Shoot
  3. 2 1934 Smart-Aleck Kill
  4. 3 1934 Finger Man
  5. 4 1935 Killer in the Rain
  6. 5 1935 Nevada Gas
  7. 6 1935 Spanish Blood
  8. 7 1936 Guns at Cyrano’s
  9. 8 1936 The Man Who Liked Dogs
  10. 9 1936 Noon Street Nemesis
  11. 10 1936 Goldfish
  12. 11 1936 The Curtain
  13. 12 1937 Try the Girl
  14. 13 1937 Mandarin’s Jade
  15. 14 1938 Red Wind
  16. 15 1938 The King in Yellow
  17. 16 1938 Bay City Blues
  18. 17 1939 The Bronze Door
  19. 18 1939 The Lady in the Lake
  20. 19 1939 Pearls Are a Nuisance
  21. 20 1939 Trouble is My Businessder)
  22. 21 1939 I’ll Be Waiting
  23. 22 1941 No Crime in the Mountains
  24. 23 1951 Professor Bingo’s Snuff
  25. 24 1959 Marlowe Takes on the Syndicate
  26. 25 1976 English Summer (사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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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
장르문학 애호가였다가 현재는 직접 장르문학 출판사 ‘피니스 아프리카에’를 차려 책을 만들고 있다.

자료제공 북스피어

발행일 2012.03.23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30&contents_id=7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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